세계사를 보면 이후 역사에 커다란 분기점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들이 있다. 특히 전쟁이 그렇다. 예를 들어 지중해의 패자로 막 떠오르던 고대 로마는 당시 지중해 해양세력으로 성장하던 카르타고와 맞부딪쳤다. 경제적 이익을 포함한 패권이 걸린 전쟁이 벌어졌는데 여기서 완승한 로마는 이후 전성기를 맞았다. 반대로 이 싸움에서 패배한 카르타고는 이후 몇 차례의 저항을 포함해 한니발이란 영웅까지 나왔음에도 쇠락하여 마침내 멸망했다.





삼성을 카피캣이라고 미국법정에 고소한 애플의 재판결과가 지난 주에 나왔다. 양쪽의 무승부 내지는 부분적인 애플의 승리를 점치던 의견과 달리 거의 완벽한 애플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출처)


삼성전자가 미국 애플과의 특허소송에서 져,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인 모바일부문 영업이익의 60% 이상을 벌어주는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가 애플의 디자인을 흉내냈다고 미국 법원에서 결론이 난 것이다. 삼성은 거액의 손해배상은 물론이고, 앞으로 미국 시장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피시 판매금지, ‘카피캣’(모방꾼)이라는 낙인에 따른 막대한 브랜드 가치 실추 상황까지 맞게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지난 24일(현지시각) 열린 평결에서, 삼성전자가 애플의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특허를 각각 3건씩 침해했다고 결론냈다. 삼성전자가 주장한 애플의 삼성 기술특허 침해 6건은 모두 기각했다.


배심원단은 평결을 하면서 삼성전자 행위를 ‘의도적인 특허침해’라고 명시했는데, 이게 삼성전자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배심원단 대표인 벨빈 호건(67)은 평결 뒤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혁신에 대한 보호 필요성을 역설한 애플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다”며 “삼성전자 고위 임원의 동영상 증언을 본 뒤 특허 침해가 의도적이었음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이 애플에 줘야 할 손해배상액은 10억4934만달러(1조2000억원)로 책정됐지만, 담당 판사의 최종판결 과정에서 더 커질 가능성도 크다. ‘의도적 침해’에 대해 징벌적 배상 조처가 내려질 경우, 배상금이 최대 3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 






이 재판은 마치 예전에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벌인 룩앤필 소송만큼이나 의미가 있던 재판이다. 당시 애플은 윈도우가 맥의 운영체제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직관적 부분을 훔쳤다고 고소했다. 만일 여기서 애플이 승소했다면 이후로 그림을 마우스로 눌러 조작하는 운영체제는 애플만이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몇 가지 계약상의 실수가 겹친 애플은 소송에 패했다. 이후 윈도우는 세계 운영체제 시장을 석권했으며, 맥 운영체제의 점유율은 현재도 6퍼센트를 넘지 못하고 있다.


애플 입장에서는 다시는 이런 결정적 순간의 '특허전쟁'에서 패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을 만 하다. 그래서 아이폰으로 인해 다시 온 천금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입장에서는 맥을 베끼며 잘나가던 윈도우나, 아이폰을 베껴서 경쟁자가된 갤럭시나 똑같은 증오의 대상이다. 아니, 오히려 같은 미국 회사도 아니라 동질감도 없는 삼성쪽은 더욱 돋보일 것이다. 따라서 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쟁은 필연적이었다.


전초전 격으로 전세계에서 판매금지와 관련된 소송전이 벌어졌다. 부분적으로는 갤럭시탭이 판매금지 당하기도 했고, 혹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특허가 무효로 판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애플에게는 커다란 무기가 있었다.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큰 시장과 상징성이다. 이것은 어째서 삼성이 미국에서 열린 이 재판에 역량을 집중했는지, 전세계가 왜 그 결과를 주목했는지 잘 설명해준다. 위 기사에서도 부연설명하고있다.


더욱이 애플은 곧바로 삼성 제품 20여종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에 나설 예정이다. 법원이 수용하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최대 시장인 미국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 집계로 지난 2분기 미국 스마트폰 시장은 전세계 시장의 16%를 넘는다. 게다가 미국 시장은 블랙베리나 아이폰 등 각종 스마트폰이 일대 격전을 치러온 대표적 시장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곳이다.




미국에서도 IT기업이 몰려있는 서부 캘리포니아 법원에 제소한 시점에서 애플은 이미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 애플의 변호사들은 태연하게 판사와 농담을 했으며 배심원을 상대로 감성적 호소로 일관했다. 판사에게 터무니없는 소환요청을 하기도 했다. 어차피 이런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애플을 베꼈다.' 는 건 배심원이 전부 알고 있을 거란 자신감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는 삼성의 변호사들이 진지하고 필사적으로 임했지만 소용없었다.


애플의 특허전쟁 승리, 기업 역사적 의미는?


미국 사법제도에 따라 배심원들이 낸 이번 평결은 최종결과가 아니다. 아직 판사의 조종을 거쳐서 내는 판결이 남아 있으며 상급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 하지만 상급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적다는 의견이 많다. 오히려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는 비관론도 많다.


미국에서 치러진 이번 특허전에서 애플은 단지 삼성에 이긴 것이 아니다. 안드로이드 진영 전체를 상대로 매우 결정적인 승리를 했다. 잡스의 전기에서도 밝혔듯이 본래 애플의 목적은 '열핵병기를 써서라도 안드로이드 진영을 멸망시키는' 것이다. 삼성은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현재 가장 잘 나가기에 목표가 된 것 뿐이다. 따라서 이번 평결은 전세계 대부분의 스마트폰을 '아이폰과 나머지 짝퉁들'로 규정하는 효과를 주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말이다.


삼성은 많은 표준특허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특허전에서 표준특허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사실 삼성이 특허에서 그나마 강자가 된 것은 예전에 반도체를 만들다가 텍사스인스트루먼트사에게 고소를 당해서 엄청난 배상금을 물고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마찬가지로 이번 특허전의 엄청난 배상금은 삼성에게 있어 또다른 자극으로 작용할 것이다. 향후 삼성은 디자인 특허와 UX특허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야만 스스로의 스마트폰 사업을 지킬 수 있다는 절박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미국법원이 칼자루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삼성이라는 강자 하나를 완패시킨 애플이 여기서 만족할 리는 없다. 삼성이 베꼈다고 지목받은 UX 요소들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일부였다. 따라서 모토로라, 소니, HTC 등 공격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진영은 아직 많다. 궁극적인 목적은 구글이겠지만 미국 공룡기업끼리 싸우는 것은 어떻게든 나중으로 미룰 것이다. 따라서 애플의 음 목표는 아마도 모토로라가 될 것이다. 적어도 미국법원에서 안드로이드 진영은 애플에게 이길 가능성이 적어졌다. 배상금 액수나 적당히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역사적 입장에서 이번 평결은 예전 윈도우와 맥의 재판결과를 역으로 보여주는 의미를 낳았다. 안드로이드 진영은 위축될 것이며 어떤 디자인이나 UX를 적용하기 전에 애플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반대로 현재 애플과 크로스라이센스 협정을 맺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떻게든 이 기회에 윈도폰을 시장에 어필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인들이 손가락 두 개로 화면을 확대하는 기술조차 아이폰 고유의 것으로 인정한 상황에서 애플의 재량권은 늘어날 것이며 패권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정의가 실현된 재판이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켰을 때도 로마인들은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신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그것이 멸망한 카르타고인에게도 정의였을 리는 없다. 안드로이드의 태생을 두고 여러가지 말이 있긴 하지만, 현재 아이폰에 대한 유일한 시장의 경쟁자이다. 이번 평결로 앞으로 아이폰의 입지와 점유율이 늘어나고 안드로이드 진영이 위축될 것인데 이것이 과연 장기적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지 궁금하다. 


그것은 마치 맥이 윈도우를 이겼다면 우리가 지금 어떤 컴퓨터를 쓰고 있을까를 상상해볼 때와 같다. 이번에는 상상이 아니고 실제다. 그때의 역사를 다시 한번 가져다놓고 영화 '나비효과' 처럼 시간을 되돌렸을 때를 보는 기분이다. 아이폰이 안드로이드에게 결정적인 승기를 얻었다. 애플은 보다 행복해지겠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어떨까? 이제부터 한번 그 역사적 움직임을 지켜보자.


 

2012/08/28 - [삼성 vs 애플, 승자는 누구일까?] - 삼성의 패소를 맞은 구글의 쿨한 대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