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인기를 얻는 인기스타는 그 대가로 지나친 관심도 감수해야 한다. 예전에 한국 연예계는 오로지 ‘이효리’ 한 명으로 먹고 살았다는 말이 있다. 별 큰 사건이 없어 쓸 기사가 없으면 이효리의 시시콜콜한 신상만 써도 대중들이 기사를 보았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요즘 IT업계에서 애플이 그런 슈퍼스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애플이 만일 사람이라면 아마 하루 세끼 밥먹고 잠자는 것까지 기사화 되었으리라. 애플님께서 오늘은 점심을 보통 때보다 적게 드셨습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쨌든 이런 관심 역시 인기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관심이 계기가 되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애플의 배터리 관리기술의 문제다. 다소 기술적인 문제지만 상당히 의미있는 화두일 거라 생각한다.
 

나는 맥북에어 2010년형을 쓴다. 2010년 10월에 나온 이 모델은 기본 운영체제로 맥 OS X 스노우레퍼드를 쓴다. CPU로는 약간 뒤진 구조인 코어2듀어를 쓰고 있지만 SSD를 채택하고 있는 데다가 운영체제가 가볍고 최적화가 잘 되어있어 쾌적하다. 아이패드보다 좋은 반응속도와 넓은 활용성으로 인해 그동안 아주 만족스럽게 쓰고 있었다.
 



그런데 애플은 2012년 중반인 지금, 벌써 이 스노우레퍼드를 구시대의 운영체제로 만들 정도로 빠르게 새 운영체제를 발표했다. 작년에 iOS의 요소가 대거 도입된 라이언이 발표되었고, 올해는 아이클라우드와 통합된  마운틴라이언이 발표되었다. 그래서 새로운 운영체제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나도 마운틴라이언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이미 작년에 라이언으로 업그레이드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후 버벅거림이 심해지고 전체적인 부팅과 종료가 상당히 느려지는 등 문제가 심각했다. 클린 인스톨을 하면 나을 거라는 충고도 있었지만 인터넷을 찾아본 결과 그래도 성능저하는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때문에 다시 스노우레퍼드로 돌아가서 며칠 전까지 그대로 썼다.
 

하지만 이번 마운틴 라이언은 속도도 나름 향상되었고 최적화도 잘 되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다소의 성능저하를 각오하고도 쓸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클린 인스톨을 했는데 아직까지는 비교적 만족스럽다. 몇초 정도의 부팅 속도 저하, 미세한 버벅거림이 있긴 하지만 라이언에 비하면 충분히 쓸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마운틴라이언을 쓴 후 내 맥북에어의 발열이 눈에 띄게 심해진 것이다. 조금만 써도 확 뜨거워지면서 팬이 시끄럽게 도는 이런 현상은 이제까지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운틴라이언을 쓰게 되면 맥북의 베터리가 눈에 띄게 빨리 소모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리고 지난 8월 24일, 애플에서는 이 점을 수정하기 위한 새로운 패치버전을 일반사용자에게 배포했다. 그 패치를 깐 후에 내 맥북에어는 발열이 눈이 띠게 줄었다.

발열이 심하다는 건 그만큼 전력이 소모된다는 뜻이다. 백열전구는 형광등이나 LED보다 훨씬 많은 열을 내며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그러니 내 맥북에어를 통해서도 마운틴라이언의 전력소모 문제는 실증된 셈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단순히 ‘에이! 이게 뭐야. 빨리 업그레이드 해서 전력소모 막아야지.’ 정도의 생각만 하지 않았다. 대체 문제가 무엇일까? 이런 생각과 함께 문득 예전에 애플이 아이폰의 새 운영체제를 발표할 때마다 비슷하게 전력관리에 문제가 있었고 항상 뒤늦게 패치를 배포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애플의 배터리 관리기술, 왜 문제가 생길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애플의 전력관리 기술 자체는 훌륭하다. 비교해서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에서는 한번도 전력관리 문제가 튀어나온 적이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전력소모가 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윈도우의 절전 능력에 기대하기 보다는 그저 화면밝기를 낮추고, 네트워크를 끈다. 그리고는 인텔에서 내놓는 새로운 저전력칩에 기대를 건다. 소프트웨어적인 전력관리에 있어서도 각 노트북 회사들이 자체 솔루션을 내놓는다. 윈도우에게 소프트웨어적인 배터리 관리기술을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대로 애플의 배터리 관리기술은 상당하다. 아마도 운영체제의 기본골격인 커널부터 시작해서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필요없는 전력을 차단하고, 필요할 때만 활성화시키는 그런 기술이 발달해 있을 것이다. 5시간 정도의 배터리 시간을 유지하는 맥북에어가 윈도우를 쓰면 3시간 정도로 배터리 유지 시간이 줄어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iOS역시 싱글코어가 듀얼코어로 가도 거의 변하지 않는 배터리 용량을 가지고도 배터리 시간을  유지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좋은 관리기술이 왜 새로운 운영체제를 발표할 때마다 문제를 일으키는가 라는 점이다. 이것은 추측컨대 새로운 운영체제의 성능향상과 관련이 있다.
 

애플의 운영체제는 항상 기대를 낳는다. 사람들은 마치 마법처럼 애플이 더 좋은 하드웨어로 다양한 기능과 강력한 성능을 구현할 거라 믿는다. 저전력 소모라든가 배터리 관리기술은 그 다음이다. 성능과 기능이 향상되지 않았는데 배터리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말한다고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진 않는다.
 

우선순위가 이렇다보니 애플의 운영체제 개발진들의 일차목표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기능구현과 성능향상이 된다. 더구나 요즘 1년에 한번 주기로 새로운 운영체제를 내놓기에 개발 기간도 짧다. 그러다보니 세심한 조절과 테스트 기간이 필요한 배터리 관리기술에는 신경을 덜 쓰게 되는 것이다.
 

신제품을 발표하는 시연회장에서는 길어야 1시간 남짓을 보여준다. 완충된 배터리를 가지고 각종 화려한 기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진다. 배터리가 생각보다 빨리 소모된다든가 하는 문제는 쇼무대 같은 시연회장에서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당장 주목은 받지 못하지만 오히려 버그없이 안정화시키려면 많은 테스트와 기간이 필요한 기술인 셈이다.
 



즉 애플에게 있어 배터리관리 기술의 문제점은 바로 이것이다. 애플은 회사 속성상 대중의 즉각적인 주목과 열광을 이끌어내는 기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반대로 인기는 떨어져도 성실하게 개발해야하는 기술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기본역량이 앞서있는 배터리관리 기술이지만 점점 촉박해지는 개발기간과 혁신에 대한 압박감이 이런 문제들을 일으키는 셈이다.


한겨레의 오피니언 훅에 이 문제에 대해 댓글을 단 임형찬님의 글 내용을 뽑아 소개한다.


그 이유는 클라우드 싱크 기능에 있습니다. 단지 클라우드 싱크 기능이 하나 뿐 만 아니라 iWork나 iMovie 과 같은 애플 제품군 외에도 에버노트와 같은 앱을 사용한다면 더욱 잦은 시그널을 주고 받으니 모바일 디바이스의 배터리 소모량은 매우 커지는 것입니다. 운영체제를 업데이트 할 때마다 이런 동기화 기능을 가진 어플리케이션을 통제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충돌이 되는 앱의 경우에는 이런 시그널에 대한 주기를 찾지 못 하니 계속 시그널을 보내게 되고…배터리는 엄청나게 소모하게 되는 것이지요.


매번 운영체제 내놓고 다시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통해 배터리 문제를 해결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문제입니다. 운영체제에서 다룰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들의 소스 코드 프레임이 뒤바뀌면서 충돌은 계속 일어나지요. 애플의 입장에서는 자사의 응용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합니다. 그러나 실제 유저들은 애플 제품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응용 프로그램을 쓰는데, 그 응용프로그램이 프레임 워크는 다른 논리 구조를 가진다는 것이지요.




기술적으로는 이런 이유라는 데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빠른 혁신을 추구하는 애플이 보다 광범위하고 시간이 걸리는 테스트를 충분하게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터지면 또 금방 수정되는 것으로 봐서도 그다지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다.


나는 애플에게 ‘기본으로 돌아가라’ 라고 충고하고 싶다. 스마트폰에 있어 그 어떤 혁신보다 중요한 기본은 통화가 잘되는 것이다. 노트북에 있어 그 어떤 기능보다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배터리 유지시간이다. 주목받지는 못해도 이런 기본 기능을 충실하게 하고 혁신을 이룩해야만 애플이 보다 긴 시간동안 인기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문참조:  한겨레 오피니언 훅 - 안병도의 IT뒤집어보기)


P.S: 삼성과 애플의 재판 결과가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나왔군요. 이 문제에 대한 분석은 월요일부터 집중적으로 올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