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적에 나는 동네에서 장난감 로봇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 보면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가 다른 장난감 로봇을 들고 온다. 로봇끼리 부딪치면 늘 그렇듯 대결을 시킨다. 어차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로봇이라 서로 말로 싸운다. 미사일 나가는 소리부터 온갖 효과음을 입으로 다 낸 뒤, 마지막으로 펼쳐지는 건 결국 입씨름이다.



내 로봇이 네 거보다 두 배는 강해! 이렇게 말하면 상대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흥! 내 건 네 거보다 열 배는 강해! 라고 응수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단위는 올라가고 어린 마음에 동원할 수 있는 온갖 숫자로 상대를 겁준다. 백배, 천배는 강하다고 그렇게 말하다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어 씩씩 거리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어차피 플라스틱 로봇은 말이 없다. 싸우는 건 그저 사람 뿐이다. 

특허권을 둘러싼 삼성과 애플의 법정 다툼을 다루면서 나는 그래도 최소한 이것이 다 큰 어른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기업의 싸움이니 말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 생각이 틀린 것 같다. (출처)



CNet은 애플이 삼성으로부터 25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Foss Patents의 플로리안 뮬러에 의하면, 애플은 삼성이 애플 지적재산들을 사용해 20억 달러의 이익을 챙겼고, 애플은 5억 달러의 이익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로열티 손해를 2,500만 달러로 잡아, 총 25억2,5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애플이 자사 특허들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삼성 기기 당 $24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내역을 보면, '318 "오버스크롤 바운스 특허'가 기기 당 $2.02, '915 "스크롤링 API" 특허가 기기 당 $3.10, '163 "탭 투 줌 앤드 네비게이트" 특허가 기기 당 $2.02이고, 자사 "디자인 특허 혹은 트레이드 드레스 권리"를 사용하는 기기 당 $24이다.
 

애플은 삼성의 단말기 한 대당 24달러 정도를 받을 만큼 아이폰의 디자인과 운영체제의 각종 특허가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뭐 이거야 그냥 주장이니 그럴 수도 있다. 디자인이란 것이 사실 예술의 영역인 만큼 그 가치는 다분히 주관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번엔 애플이 스스로 침해한 삼성 기술의 가치에 대해 얼마를 생각하고 있는지 한번 보자. (출처)




애플이 미 연방법원 북 캘리포니아 지원에 접수시킨 문서에 의하면, 애플은 삼성의 표준필수 특허 당 $0.0049를 배상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삼성은 이탈리아 법원에 제출한 문서에서 자사 무선 표준필수 특허들의 로열티로 애플의 판매액수에서 2.4%를 요구했다. 

이 뉴스를 보면 예전에 있었던 삼성과 애플의 합의를 위한 협상이 왜 결렬 되었는 지를 알 수 있다. 두 회사 사이에 서로의 기술에 대한 가치평가가 너무도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간단히 한번 계산해보자. 애플이 스스로 매긴 예술적 감성의 가치는 기기당 24달러이다. 반대로 삼성에 줄 수 있는 기술적 가치는 특허당 0.0049달러이다. 대충 잡아 아이폰에 삼성 특허가 5개가 사용되었다고 치자. 그렇게 되면 대충 기기당 0.0245 달러가 된다. 24달러와의 차이는 무려 1천배에 달한다. 예술적 가치는 기술적 가치의 1천배라는 주장인 셈이다.

애플 디자인은 삼성 기술의 수천배 가치?



솔직히 말해서 나도 예술가다. 소설이란 예술을 하고 있기에 이것을 위해 얼마나 머리를 짜내고 힘들게 창조하는 지 알고 있다. 예술의 가치는 아무리 후하게 매겨도 부족하다. 아름다움과 감성의 가치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전공이 정보통신공학이다. 실험실에서 통신기술 하나를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겨운 노력이 들어가는 지도 안다. 그러기에 아무리 예술이 소중하다고 해도 기술의 수천배 가치를 지녔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예술이나 기술은 각자 영역이 다를 뿐 소중한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에 쓴 삼성의 기술은 스스로 법정에서 진술한 대로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특허이다. 그러기에 FRAND란 특허제도를 통해서 개방되어 있다. 분명한 것은 개방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가 떨어진다든가 보잘것 없다는 뜻이 전혀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업계의 기술진보를 위해 필수적이란 가치를 공통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애플은 비록 법정에서의 이익을 위한 발언이라고는 해도 어이없는 발언을 했다. 이제까지 수많은 기술 관련 재판이 있었지만 이정도로 오만한 발언을 한 회사는 없었다. 아이폰과 각종 제품을 통해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지나친 자부심을 보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백보 양보해서 애플의 특허가치가 삼성의 기술가치보다 몇 배 뛰어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상대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아직도 삼성의 부품은 애플의 주요제품에 핵심파트로 공급되고 있다. 그렇게 가치가 없는 부품을 써서 만든 제품이 자랑스러운가?

애플의 이번 법정 발언을 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입씨름을 떠올린 건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경영학과 인문학을 배우고 이미 충분한 지식과 지혜를 쌓았다는 어른이 법정에서 어린아이와 같단 말인가?

애플에게 아이폰은 아마도 내 어린 시절의 장난감 로봇보다 소중한 모양이다. 하지만 한때 그랬던 나도 이제는 어른이 되었기에 더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철이 들었건만 애플은 아직 철이 안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