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단논법이란 게 있다.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받았으면 누구든 배우는 기초적 논리 전개법이다. 예를 들어 A는 B이다. 란 논리와 B는 C이다. 란 사실을 제기하면 그 다음에는 당연히 그러므로 A는 C이다. 란 논리를 전개할 수 있는 것이다.


비교적 복잡성이 덜한 IT업계 뉴스를 보면 이런 삼단논법이 비교적 잘 맞아들어간다. 특히 같은 주제로 나온 뉴스 두 개만 놓고 비교해봐도 재미있는 결론이 도출되곤 한다. 이것만 잘할 수 있어도 어디서 사기는 안당하겠구나 라고 생각할 정도다.

얼마전 KT는 스마트티비를 둘러싸고 삼성과 전격적인 충돌과 합의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불만은 고스란히 남았는지 최근 연이어 '우리에게 돈을 달라.'는 발언을 하고 있다. 말하는 주체와 내용은 조금씩 달라도 결국 수렴해보면 결론은 '돈을 더내라.'일 뿐인 발언이다. 이미 돈을 내고 정액제를 이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짜증이 날 뿐이다. 이용요금 자체를 올리고 싶은 데 그게 안되니까 하는 투정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KT가 그리는 인터넷 세상은 어떤 곳일까. 슬그머니 그게 궁금해지려는 차에 재미있는 뉴스 두개가 올라왔다. 우리 한번 아이유의 '마시멜로' 노래가사 일부처럼 '철저히 비교분석' 해보자.(출처)


KT(대표 이석채)는 4월까지 서울 및 수도권 지하철 전 노선 전동차에 구축되어 있는 이동 와이파이 장비를 체감 평균 속도가 최대 5배 빠른 '프리미엄 퍼블릭에그'로 교체한다고 23일 발표했다.
 
이전에는 와이파이 AP 하나에 30명 정도만 수용할 수 있어서, 지하철 한 객차내에 100명이 넘는 인원이 끼어 타는 출퇴근 시간이면 사실상 와이파이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번에 KT가 교체 구축하는 프리미엄 퍼블릭에그는 최대 접속자가 80명까지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접속 인원이 늘어난다는 것은 하나의 와이파이 AP가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의미로, 이용자 입장에서는 체감 속도가 보다 빨라질 수 있다.

KT 측은 "와이파이 체감 평균 속도가 최대 5배까지 빨라질 것"이라면서 "스마트폰 고객들이 프리미엄 퍼블릭에그를 통해 무료이면서 무제한의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즐길 수 있고, 특히 출퇴근 혼잡 시간에도 전동차에서 안정적인 와이파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뉴스 하나로만 보면 아주 반가운 뉴스다. 비록 자사 고객을 위한 서비스지만 KT가 인터넷 발전과 속도향상을 위해 매우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번엔 동시에 나온 이 뉴스를 보자. (출처)



KT 스마트네트워크정책 TF 김태환 상무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데이터를 많이 사용하는 컨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규정을 세우고 싶다고 언급했습니다. 데이터 과다사용은 네트워크 블랙아웃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KT 망을 사용할 때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추가비용은 광고수입 일부를 나눠가지거나 네트워크 사용료에 추가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불할 수 있을 것이며, 우선은 인터넷 TV가 논의의 중점이지만 향후 유튜브와 같은 매체로도 확대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삼성과 수익분배 규정이 정해지면 향후 애플이나 구글이 내놓을 인터넷 TV에도 같은 규정을 적용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위의 뉴스에서는 소비자와 업체가 5배 빠른 속도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좋은 망을 깔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래 뉴스는 데이터를 많이 쓰는 컨텐츠 제작 사업자에 대해서는 별도 과금을 하는 원칙을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보통 속도가 5배 빨라지면 사업자는 그 속도를 충분히 활용해서 많은 데이터를 한꺼번에 전송해서 풍부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컨텐츠를 만들려고 애쓴다. 소비자는 이런 컨텐츠를 접하면서 기술발전과 편리함을 체험한다. 그래서 돈을 지불하면서 사업자가 성장한다. 그러면 다시 그런 컨텐츠가 풍부해지면서 더욱 빠른 속도를 요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망사업자도 가입자가 늘어나거나 보다 큰 대역폭을 많은 돈을 내고 쓰는 가입자가 늘어나 이득을 보게 된다. 인터넷과 기술은 이렇게 발전하는 선순환을 거친다.

KT의 트래픽 과금 주장이 만드는 미래는?

그런데 지금 KT는 빠른 망을 깔아놓고는 빠르게 쓰라고 말하면서 한쪽으로는 그 빠른 속도로 증가되는 데이터를 만드는 컨텐츠 사업자에게는 데이터량을 늘리지 말라고 한다. 나아가서 어떻게든 컨텐츠 사업자에게 데이터양 증가에 대한 책임을 지워 돈을 추가로 내게 하거나 이익을 나누어 가지려고만 한다. 그렇다면 컨텐츠 제작자는 어떻게 하겠는가? 데이터량을 늘리는 서비스를 만들지 않거나 심지어는 줄이는 컨텐츠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

위에서 말한 삼단논법을 이용해 결론을 내려보자. KT의 주장대로 하면 부분적으로 KT는 몇몇 업체에게서 돈을 더 받는데 성공할 수도 있다. 어린애가 세뱃돈을 받은 것처럼 매우 기쁠 것이다. 그러나 주위의 다른 모든 업계는 어떻게 변할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빛의 속도로 워프하는 데이터망'을 가지고 펼치는 예전 'PC통신 하이텔' 수준의 서비스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돈을 아끼기 위해 컨텐츠 사업자는 장식으로서 별로 필요없는 데이터를 전부 자체 제거할 것이며 그저 핵심 데이터만 주고 받는 식으로 컨텐츠를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러면 추가요금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빨라진 인터넷망에 기대하는 장미빛의 풍성한 서비스가 아니라 하얀 화면에 검은 글씨만으로 이뤄진 컨텐츠가 주류가 될 것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스마트폰이 아무리 OLED와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자랑해도 막상 그 위에는 글자와 코드숫자 위주로 구성된 컨텐츠만 떠다닐 것이다. 

더구나 사용자를 묶어주거나 서로 엄청난 커뮤니케이션을 유발할 앱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KT에 돈을 낼 걱정 때문이다. 카카오톡 같은 건 물론이고 사용자간 채팅기능까지도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마치 인터넷 종량제 실시 후의 황폐한 미래를 보는 듯한 세상 말이다. 


말해놓고 보니 이건 또다른 디스토피아 SF영화가 될 것 같다. KT가 원하는 미래를 그린 좋은 영화이긴 하겠지만 나는 이런 세계를 원하지 않는다. KT는 트래픽을 그저 통행세를 거둘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기 망을 먹여살리는 혈액과 같은 존재로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예전에 와이파이칩이 휴대폰에 탑재되지 않았을 때, 엄청난 인터넷 요금에 놀라 사람들이 아무도 휴대폰 인터넷을 안쓰던 그런 세상이 다시 오기를 바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