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출간 (중앙 M&B)

서문(김경진)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전혀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해남 땅과 진도 사이 울돌목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온 국민 누구나 결과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명량해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는 간과된 느낌이 있습니다. 당시 조선은 망했다는 인식이 일반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수군이 서해에 진입하면 망한다는 위기의식에 명나라는 제 앞가림하기 바빠 조선을 도울 여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 조정과 명나라 조정이 다 포기한 마당에 명량해협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명량해전이라는 한 전투를 당시 한중일 삼국이 어떻게 지켜봤는지, 그리고 그 해전이 세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크게 봐야 할 것입니다.

명량해전은 임진왜란의 여러 전투 중, 그리고 세계해전사 중 전술적, 전략적으로 매우 특이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명량해전은 세계 전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드라마틱한 사건입니다. 그 해전을 자세히 고증하고 소설로 묘사함으로써 이 사건이 그 동안 얼마나 사실과 동떨어지게 축소되고 왜곡됐는지, 그리고 일반인이 알고 있는 상식보다 당시 조선수군이 얼마나 얼토당토않게 불리하고 심각한 상황이었는지를 밝히고 싶습니다.

'격류'는 이제까지 소설과 영화 등에서 수도 없이 다뤘던 충무공의 강력한 캐릭터와 인간적 고뇌, 그리고 처절한 충효사상에서 벗어났습니다. '격류'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다만 관찰 대상에 불과합니다. 주인공들은 인간적 결함을 안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은 몇몇 부하 장수들, 두려움 속에서 살기 위해 싸운 일반 군졸들과 노 젓는 격군들, 그리고 일본수군 무장들과 평범한 왜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줄거리는 이순신이라는 한 개인의 투지와 결단에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 고증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원균이나 선조 등의 인물과 공과에 대한 판단과 판옥선과 거북선에 대한 설정 등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 어떤 사료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일단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많은 자료를 비교 분석하면 어느 정도 안개가 걷힌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 역사학계에서 무시해온 전쟁부분에 대해서 특히 집중적으로 자료를 찾고 분석했습니다.

'격류'는 공저입니다. 일본쪽 등장인물이 나온 부분은 일본 전국시대사에 관심을 가진 안병도 님이 썼습니다. 아마도 임진왜란을 다룬 소설 최초로 한일 양국의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고 쓴 역사소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통군사사를 연구한 신재호 님은 조선과 일본의 무기체계와 군선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권말 부록을 참조하시면 소설 내용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충무공을 다룬 소설이 국내에 몇 있지만 음모론이나 충무공 개인 캐릭터 위주로 진행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에 반해 '격류'는 전투 자체가 중심입니다. 단 하루동안 격렬하게 벌어진 명량해전이라는 전투를 통해 임진왜란 전체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저자 후기(안병도)



  임진왜란을 다룬 한,일 양국의 소설을 보면서 늘 아쉽게 느끼던 부분은 '제대로 된 고증' 과 '객관적 시각'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의 임진왜란 관련 소설에서 일본군에 대한 묘사는 너무도 엉망이었습니다. 일본군 장수 개개인의 특성과 성격을 제대로 묘사한 글은 거의 없었으며 구체적인 편제와 전술 운용, 무기종류 등에 이르러서는 전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지어 이런 잘못은 다른 매체로도 이어져, 얼마 전 엄청난 호평 속에 방영된 텔레비전 사극에서도 육지에서 진격하는 왜병의 등에 절대 그 시점에 거기 와 있을 수 없는 수군부대의 깃발이 꽂혀 있었습니다. 명백한 고증의 잘못입니다.

  국가간의 전쟁을 다룬 소설에서는 양쪽 국가와 군대,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어느 한쪽 상대방을 대마왕의 부하나 도적떼쯤으로 표현한다면 아동용 만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인 제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대해 자료를 구하고 연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일본 전국시대의 사료들은 우리 나라의 조선왕조실록과 같이 정사라 불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일본인들조차도 그 당시 역사에 관해서는 정확한 수치와 분석을 제시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또한 겨우 구한 자료 가운데서도 일본 중세어 원문으로 되어 있는 부분은 해석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자료수집의 제한과 언어의 장벽. 저에게 격류는 이런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노력의 결실입니다.

  객관적 시선을 가지고 일본군을 좀 더 사람답게 그리려고도 애썼습니다. 분명 일본은 침략자였고 왜장과 왜병들은 조선에 온갖 나쁜 짓을 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왜장과 왜병으로 단일화되지 않은 개개인 장수와 병사들은 잔혹함과 광기 외에 각자 여러 가지 사연을 품고 고민도 했을 것입니다. 전쟁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시대의 흐름이라는 '격류'에 휩쓸린 자들의 눈에는 과연 무엇이 보였을까요?

  많은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덕분에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주필로서 고생해 주신 김경진 님께 수고하셨다는 말과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참고자료를 맡아주신 신재호 님과 검토를 맡아주신 전지영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럼 다음에 더 좋은 글로 독자분들을 뵙길 바라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안병도 -

저자 프로필



김경진  전쟁소설 데프콘, 동해, 남북 저자, 남해 공저자,  판타지 하늘길잡이 공저자

안병도  역사소설 일본정벌기, 만월의 나라, 역사판타지 본국검법 저자

신재호  군사전략 및 전통군사사 전문가. 전쟁소설 데프콘, 동해, 남북 공저자

전지영  초등학교 교사. 판타지 하늘길잡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