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아버지를 둔 아들은 여러모로 힘들다. 많은 열의와 재능을 보이면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함부로 나선다는 말을 듣는다. 반면에 조용히 있으면 아버지에 못미치는 자식이라는 수근거림에 시달린다. 위대한 왕 뒤에서 그 후계자가 된 입장도 마찬가지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애플이라는 거대 기업을 책임진 CEO는 팀쿡이다. 이 팀쿡은 사실 애플 시절에는 잡스에 가려져 그렇게 조명받지 못했다. 차라리 수석 디자이너인 조나단 아이브 쪽이 훨씬 주목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건실하고 꾸준한 관리능력을 인정받은 팀쿡은 마침내 잡스 이후의 애플 CEO가 되었다. 어느새 그가 취임 백일째를 맞았는데 아직 애플은 그다지 변화가 없다. 이것에 대해서 뉴스가 하나 나왔다.(출처)

팀 쿡 애플 CEO가 지난 12월 2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전문가들은 쿡 CEO가 스티브 잡스의 경영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그와 잡스를 더 구별짓게 하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CNN뉴스는 쿡 CEO가 애플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앞으로도 애플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스티브가 만든 독특한 회사 문화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강조한 점에 주목했다. 쿡 CEO 스스로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색깔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조화를 강조하는 그의 경영 스타일이라는 분석이다.

쿡 CEO가 잡스보다도 여러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전문가의 평가도 함께 전했다. 프레젠테이션 능력이나 창의적인 면에서 많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존 잭슨 CCS 인사이트 애널리스트는 “전 세계가 주목했던 잡스식 발표는 이제 전설로 남았다”고 했다. 마이클 킹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잡스가 향후 몇 년간 애플이 개발해야 할 제품 리스트를 남겼겠지만 쿡은 '마법의 손'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비판했다.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 전기에서 잡스가 쿡을 “생산적인 인물이 아니다”고 평가한 내용을 담았다.

쿡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도 부각시켰다. 쿡이 스티브 잡스보다 경영측면의 능력을 더 갖추고 있고 오픈된 마인드를 가진 것으로 평가했다. 잡스가 소홀했던 기업 보고서 작성이나 프로모션 같은 CEO직 '일반' 임무에서 앞선 실력을 보이고 있다.


시중에는 벌써 팀쿡에 대한 책도 나와있다. 그 가운데는 한국 사람이 쓴 책도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도 애플의 움직임과 경영전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막상 팀쿡의 경영스타일들을 보면서도 과거에 애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그 결과가 어땠는지와 비춰보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역사소설가로서 나는 동서양의 제법 많은 역사를 공부하고 작품에 이용했다. 그런만큼 역사가 왜 중요한 지를 안다. 인간과 사회는 의외로 일정한 규칙대로 움직여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인간의 한계를 깨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팀쿡은 지금 위대한 아버지를 둔 아들의 딜레마에 고민하고 있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팀쿡의 애플, 제대로 순항하고 있는가?

팀쿡은 현재 두 가지 상반되는 문제점에 시달리고 있다.

1 . 애플을 잘 이끌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가 이미 구축해놓은 애플의 정책과 경영전략, 대외 이미지를 지켜야 한다. 애플은 알다시피 잡스가 만들고 번영시킨 회사다. 내노라하는 천재와 야심가들이 모여서는 잡스라는 카리스마 강한 독선가 밑에서 제대로 조련되어 제품을 냈다.


그런데 잡스라는 위대한 조련사가 사라지면 애플 직원들은 종종 통제되지 않는 야수에 가깝게 변했다. 잡스가 애플을 떠났던 시기에 다른 어떤 CEO도 이 직원들은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던 역사가 있다. 따라서 이런 애플을 유지하려면 최대한 잡스가 남겨놓은 유산과 정책을 이어나가야만 한다.

2 . 하지만 반대로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아닌, 팀쿡의 애플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잡스가 구축한 요소, 잡스가 금지한 정책, 잡스가 정한 규칙을 타파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전에 있던 요소 가운데 맞지 않는 것을 배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스티브 잡스는 현재 애플의 CEO가 아니다. 어디선가는 잡스가 이미 3년 계획을 세웠다느니 5년동안 내놓을 제품을 다 지시해놨다느니 하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그건 모두 허망한 소리다. 노스트라다무스조차 실현되지 못한 예언이 수두룩한데 예언가도 아닌 기업인 잡스가 어떻게 5년동안 경쟁업체의 움직임과 새로 나타난 혁신, 애플이 처할 상황까지 예측해서 지시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게 가능하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운전을 배울 필요가 없다. 우리 운전석 앞에 붙어있는 네비게이션에게 모든 걸 맡기고 우리는 뒷좌석에서 쉬자.


팀쿡이 아직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팀쿡은 경영 스타일 면에서 스티브 잡스를 쫓아내고 애플을 경영했던 존 스컬리를 닮았다. 팀쿡은 건실한 실적과 관리를 가장 중시한다. 따라서 혁신제품을 잘 운영하며 그것을 변형시켜 최대 수익은 뽑아낼 수 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무엇인가에 도전하고, 리더로서 자유분방한 직원을 통제해서 하나의 프로젝트에 매진시키는 능력이 부족하다. 위에서 가트너와 아이작슨이 한 말도 결국 핵심은 이것 하나다.

결론을 내 보자. 지금 팀쿡의 애플은 순항은 커녕 출발도 안 했다. 하지만 미뤄둘 수는 없다. 슬슬 팀쿡의 애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다른 ‘움직임’을 보여줘야 한다. 단지 부품을 개량해서 아이폰5를 만들고 아이패드3를 만들란 뜻이 아니다. IT에 대한 팀쿡의 근본적인 고민과 독자적 철학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애플이라는 기업에 가지고 있는 기대다. 그것을 만족시켜줄 때 비로소 팀쿡의 애플은 소비자들의 확고한 지지하에 순항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