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참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은 삼국지연의였다. 나관중이 실제 중국 후한말의 역사인 삼국지를 바탕으로 가공해서 만든 이 소설은 아마도 최고의 역사소설이 아닌가 싶다. 이미 조선시대부터 한중일 삼국이 공히 삼국지의 인물을 잘 알고 있다. 중국에는 제갈량의 사당이 있고, 조선에서는 관운장의 사당을 지었다. 일본에서도 에도시대에 이미 상업출판물로 삼국지가 인기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왜 뜬금없이 삼국지 이야기일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오늘날 IT업계의 연합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너무도 잘 적용되기 때문이다. 우선 어제 나온 뉴스 하나를 보자. 아마존이 삼성과 손을 잡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출처)

삼성전자와 아마존이 디지털 콘텐츠 사업에 협력하기로 하고 조만간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11월 29일 삼성전자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디지털콘텐츠 수급과 관련, 삼성전자와 아마존이 협력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며 내년 초 이를 구체적으로 발표할 예정이 다.
 
해당 프로젝트는 콘텐츠 수급과 유통에 한정되며 관심의 초점인 킨들 단말기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해외서 판매되는 갤럭시탭에선 아마존 킨들 애플리케이션이 구동된다. 그러나 내년 발표되는 프로젝트는 이와는 다른 성격의 사업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아마존의 협력은 지난 7월부터 예고돼 왔던 부분이다. 삼성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인 'S클라우드'에 아마존 3S 플랫폼 활용을 활용키로 한 것. 당시 업계는 삼성과 아마존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시작으로 콘텐츠를 포함한 다양한 부문으로 협력관계를 넓혀갈 것으로 관측했다.
 
삼성전자는 아마존과 협력하면서 갤럭시탭을 포함한 스마트 단말기에 콘텐츠를 확충한다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전자기기 업체들은 스마트 생태계의 중심축인 콘텐츠 부족을 지적받아 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아마존이 협력해 반 애플 전선을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며 "애플이 아이북스와 아이튠스로 디지털콘텐츠 시장을 압박하는 만큼, 삼성과 아마존의 공통 이해관계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 관측했다.

흔히 우리가 말하기를 적의 적은 친구라고 한다. 업계에서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절대강자가 아니라면 끊임없이 누군가와 손을 잡고 발전을 도모하면서 경쟁업체에 대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에서 가장 유명한 전략은 무엇일까? 그것은 제갈공명이 자기를 찾아온 유비에게 제시한 ‘천하삼분지계’다. 당시 절대 강자로 군림한 조조의 세력에 대항해서 천하를 잡을 기회를 얻기 위한 계책이다. 제대로 된 나라조차 없는 유비에게 제갈량은 북쪽의 조조와 남쪽의 손권에 이어 제 3의 세력이 될 것을 권한다. 그리고는 상대적으로 약한 손권과 힘을 합치게 되면 천하는 마치 세개의 다리가 있는 솥처럼 서로 버티며 세력균형이 유지될 것이라 한다. 그러다보면 기회가 생길 것이니 그것을 잡으라는 것이다.

지금 IT업계를 비유해보면 절대강자는 애플이다. 비록 스티브 잡스가 죽긴 했지만 워낙 이뤄놓은 게 탄탄하고 현금보유고도 많다. 제품라인업도 충실한 애플은 다른 협력업체와의 동반관계를 허용치 않는다. 애플 아래의 하청업체가 되든가, 아니면 도태되든가 하는 식으로 공존의 여지가 별로 없다. 

한발짝 떨어져서 정면대결을 피하고 있는 구글에 비해서 이제까지 애플과 정면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삼성이었다. 하드웨어를 직접 만들어 소비자에게 파는 업체인데다가애플에게는 없는 부품공장까지 갖춘 기업이다. 다만 삼성에게는 운영체제가 없고 컨텐츠가 부족하다. 



그런데 지금 애플과 경쟁하기 위해 급속히 세력을 늘려가는 기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아이튠즈에 몫지 않는 풍부한 전자책, 음악 등의 컨텐츠를 바탕으로 하드웨어 제조까지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아마존은 애플에 비하면 하드웨어 제작 경험과 협력 기반이 너무 부족하다.

여기서 바로 두 기업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하드웨어에 강한 삼성과 컨텐츠에 강한 아마존이 서로 협력하면 애플에 대항할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삼성과 아마존, 새로운 동맹의 시작일까?

사실 삼성이든 아마존이든 완전히 애플과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기업은 아니다. 애플과 일체의 관계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기업은 아마도 마이크로소프트 정도일 것이다. 삼성에게 애플은 주요 반도체와 부품을 사주는 대량으로 사주는 고객이다. 아마존에게 애플은 킨들 앱이라든가 전자책을 유통하기 위한 iOS플랫폼을 제공해주는 유통사다.

 그럼 두 기업이 왜 지금 시점에서 손을 잡고 일종의 반애플 동맹을 맺어야 할까? 그것은 애플의 전략이 이미 두 기업의 영역을 다 먹어치우기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주 수입원인 전자책과 음악은 이미 애플의 아이튠즈가 아이패드를 앞세워 강력히 도전하고 있다. 삼성의 주요수입원이던 휴대폰 단말기에서 애플의 아이폰은 크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소비자 제품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애플은 일체의 타협도 공존도 없다.


결국 두 기업의 새로운 동맹은 매우 절박한 생존의 위협에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손을 내밀어봐야 붙잡아 주지 않을 상대가 애플이라는 걸 알기에 뭉쳐서 싸울 수 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그래도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삼성과 아마존의 협력은 꽤나 흥미롭다. 앞으로도 두 기업이 어떤 재미있는 것을 내놓을 지 기대해보자. 삼성과 아마존의 이번 동맹이 IT업계를 애플과 함께 갈라서 차지하는 '천하삼분지계'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