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교대 근처를 걷다가 한 이통사 대리점 앞을 지나쳤다. 아이폰4S를 파는 그 앞에 내걸린 광고 현수막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남겨준 마지막 선물’ 이란 글자가 선명했다. 스티브 잡스의 존재가 그만큼 위대했기에 다른 화려한 문구가 필요없이 그 한마디로 광고가 가능했다.



때문에 지금도 애플의 많은 제품들이 그의 후광을 입으려고 한다. 어차피 애플의 제품이라면 뭔가 뛰어난 부분이 많지만 거기에 잡스란 이름의 ‘아우라’를 입히면 더욱 빛나게 되어 사람들의 냉정함까지 마비시키는 효과도 있다. 요즘 한쪽에서 보도되는 티비만 해도 그렇다. 잡스가 죽기직전까지 매달렸다는 궁극의 티비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말이 많다.

잡스는 분명 마지막까지 위대한 구상을 했다. 그 구상은 일정부분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이미 이전 포스팅 - 잡스가 남긴 아이티비, 어떤 방향을 제시할까? 를 통해서 낙관적 부분을 언급했다.

이제 그럼 비관적인 부분을 이야기해보자. 마침 얼마전 전자신문에서 컬럼 기고 요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내 분석을 실었다. 그것을 일단 살펴보자. (출처)


옛말을 하나 들어보자.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을 당해내지 못한다. 열심히 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당하지 못한다. 즐긴다는 것은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 일에 숨겨진 본질을 파악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온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 '아이콘'에 따르면 그는 TV를 싫어했다. 바보를 만드는 기계라고 생각했으며 거의 시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잡스가 골몰한 것은 양방향성을 지닌 컴퓨터였다. 단방향 전달매체인 TV는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잡스가 마지막으로 고안한 애플의 TV는 인터페이스 부분에서 괄목한 발전을 이룬 듯하다. 제품이 나오지 않아 예단하긴 이르지만 리모컨과 복잡한 버튼이 아닌, 인공지능과 음성명령을 이용한 획기적인 조작이 가능할 거란 예상이 있다. 분명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룬다. 그런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TV에 대해 사람들이 원하는 미래가 단지 조작성을 강화하는 것뿐일까?

애플이 진정으로 TV에서 성공을 하려면 내부 고위직 가운데 이를 진정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잡스가 컴퓨터에 쏟은 열정 그 이상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팀 쿡을 비롯한 애플 경영진과 조나단 아이브를 비롯한 디자이너 가운데 TV를 즐기고 그 핵심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잡스가 구상하고 애플이 만들 이른바 아이티비를 들면서 내가 심히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 애플의 그 많은 디자이너와 고위직 가운데 정작 그들이 만들 티비 자체를 사랑하고 열심히 시청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플이 어째서 초창기에 전설적인 업적을 이뤘을까? 그 구성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천재적인 컴퓨터 기술자이자 그것을 즐기는 해커였다. 또한 스티브 잡스도 아타리에서 게임을 만들고 컴퓨터를 조작하길 즐겼다. 단순히 일이라서 하고, 사업이라서 쓰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매킨토시 컴퓨터,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보자. 잡스는 일상생활에서도 이들 제품을 기꺼이 쓰고 즐긴다. 이처럼 최고 경영자가 직접 즐겁게 생활의 일부로 쓰는 물건이니 다른 어떤 기업보다 선진적이고 사용자친화적인 혁신을 할 수 있었다.

잡스가 구상한 아이티비, 궁극의 TV일까?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가 과연 전인생을 통해 TV를 얼마나 즐겼을까? 거의 보지 않았다. 설령 얼마전부터 보았다고 해도 그 시간은 길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잡스라는 천재가 구상한 ‘궁극의 TV’는 매우 일부분에서만 영감을 받았을 뿐, 티비만 매체 전체를 조망하지 못한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인터페이스의 혁신과 컨텐츠의 확장. 아이티비가 핵심으로 삼게 될 주제는 아마도 이 두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이것이 끝일까? 현재의 티비는 방송기기이자 디스플레이 기기이다. 하지만 미래로 간다면 벽에 내장되어 마치 벽지처럼 변해서 인테리어의 일부분이 될 수도 있고 무대 조명 같은 은은한 실내 조명기기가 될 수도 있다. 통신기기가 될 수도 있고 정보전달의 서버가 될 수 있다. 인터페이스가 편해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형태와 쓰임새의 확장을 포함한 여러 방면의 발전이 따라야 한다.


애플의 티비산업 진출은 분명 여러 가전회사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분명 애플의 시도는 일정부분 영향을 줄 것이다. 긍정적으로 볼 때 현재 낙후되어 있는 인터페이스 기술을 확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고, 지능형 가전제품의 발전을 앞당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막상 애플의 티비 자체로는 반드시 성공할거라고는 볼 수 없다. 진정으로 티비를 즐기면서 시청자의 위치에 서는 누군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