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에서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는 북풍과 태양의 대결이다. 사나운 바람에 나그네는 오히려 외투를 꽉 눌러 외투를 벗지 않았지만 뜨거운 태양이 비추자 저절로 외투를 벗었다는 이야기는 많은 사회현상에 있어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있듯이 오가는 칭찬 속에 더욱 열심히 일하면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와 기업, 얼마나 좋은 광경인가?



자, 그런데 여기까지는 동화의 세계다. 현실 세계로 돌아와보자. 과연 햇빛만 비추면 사람이 모두 열심히 일하던가? 화내지 않고 칭찬만 해주면 기업이 더욱 잘 발전하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코미디 영화속에 나오는 세상이라면 모를까. 사람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을 자극하는 방법에는 칭찬도 있지만, 동시에 공포나 분노도 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할 지 몰라도, 공포는 쥐가 뱀을 향해 달려들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회사에서 승진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해고되지 않으려고 보다 최선을 다한다. 상은 안받아도 욕심만 포기하면 되지만 벌은 받으면 심각한 생존의 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슬프고도 냉혹한 어른의 세계다.

삼성과 엘지, 현재 한국의 전자업계를 대표하는 두 기업이 찬바람을 맞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세계 최고 종목인 액정표시장치(LCD)가 불황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상당히 심각한 불황이다. 따라서 두 회사의 이 분야 사업이 모두 적자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적자를 대하는 양쪽의 방식이 정반대이기에 눈길을 끈다. (출처)



액정화면(LCD) 패널 사업에서 나란히 2분기 내리 적자를 거둔 삼성과 엘지(LG)가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은 사업 책임자를 엄하게 벌주는 쪽을 선택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엘시디 패널 사업 부진 책임을 물어 엘시디 사업부장(사장)과 제조센터장·개발실장(부사장) 등 경영진 3명을 모두 경질했 다.

이와는 달리, 같은 처지의 엘지디스플레이는 되레 임직원들의 기를 살리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권영수 엘지디스플레이 사장은 최근 사내통신망에 올리는 ‘최고경영자 노트’를 통해 “힘들지만 앞을 보고 나가자”며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격려하며 나중을 위해 기술 개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임직원들을 다독이고 나섰다.

업계에선 삼성과 엘지가 같은 처지인데도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고 ‘관리경영’(삼성)과 ‘인화경영’(엘지)의 차이로 해석하며, 두 회사가 선택한 카드가 결국 어떤 열매를 맺을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뉴스에서 보다시피 양쪽 기업은 서로 경영방식 자체가 다르다. 삼성이 엄격한 신상필벌과 철저한 능력위주 경영을 펼치는 데 비해, 엘지는 가족처럼 보듬어주면서 애사심을 통해 분발을 유도해낸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삼성이 북풍이고, 엘지가 태양에 가깝다.



하지만 동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삼성이 더 많은 경쟁에서 이겼고, 많은 이익을 냈다. '1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는 언젠가의 광고처럼 삼성은 쉴새없이 구성원을 채찍질하며 앞만 보게끔 했기 때문이다. 공포도 엄청난 힘을 낳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엘지는 태양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상당한 분야에서 오히려 북풍에 밀린 뼈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번 대응이 언론의 주목을 끈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의 초점은 사실 그런 사소한 문제에 있지 않다. 넓게 본다면 삼성의 관리경영이든, 엘지의 인화경영이든 그냥 '경영' 이다. 사람 관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반면 LCD의 실질적 적자를 가져온 원인은 세계 시장에서 생산량이 수요를 훨씬 초과했기 때문이다. 경쟁을 통해 너무 내려간 공급가로는 도저히 채산성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구조적인 문제인데 이것을 단지 경영만 가지고 극복할 수는 없다.

이런 포화현상이 왜 왔는지가 중요하다. 이것은 이전에 삼성과 엘지가 일본업체를 이길 때 쓴 방법 때문이다. 이때 두 기업은 일본 기업들이 세계 시장의 불황에 주춤거리며 생산량을 줄일 때를 기회로 생각했다. 오히려 이때 공격적으로 차세대 라인 증설에 나선 두 기업은 불황이 지나고 호황이 오자 반대로 엄청난 수익을 내며 급부상했다.



지금은 삼성과 엘지가 세계 LCD 분야의 챔피언이다. 이 챔피언을 이기기 위해 나선 대만과 중국의 업체들은 불황에도 불과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예전의 한국 회사가 썼던 방법 그대로 흑자가 났을 때의 이익을 생각하고 굽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장에 생산량이 늘어나서 계속 디스플레이 부품값이 내려가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법은 디스플레이 기술을 더 높이는 것이다. 흉내내기 어려운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기술이 아닌, 단지 양과 가격만으로 흥정하자는 건 구시대의 발상이다. 지금은 기술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대다.

삼성과 엘지, 누가 LCD 사업에서 이길까?

결국 기사에서 흥미거리라고 제시한 관리경영과 인화경영은 두 기업 사업의 성패와 아무 관련도 없다. 진짜 요소는 오래 버티는 것이다. 대량해고나 사업정리 없이, 신제품 출시도 원만하게 하면서 끝까지 LCD시장에 남아있는다면 그것만으로 이길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태양빛은 기다림을 상징하는 것일 수 있다. 사방에 빛을 뿌리면서 끝까지 기술개발을 하는 태양같은 기업이 끝내 웃을 것이다. 반면에 견디지 못하고 섣부른 행동을 취하는 북풍 같은 기업은 망할 것이다. 치킨게임이나 다름없는 세계 시장에서 두 기업의 서로 다른 행보를 잘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