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집중해서 보게되는 모양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도 있고, 유명한 점장이도 막상 자기 운세는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기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스스로만 잘났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한심하거나 못난 사람으로 비칠 것이다.



삼성과 엘지가 요새 연일 격렬한 논쟁을 하고 있다. 원인은 가전제품의 핵심인 거실용 티비로서 3D 구현 방식을 놓고 자사가 채용하는 방식이 더 좋다고 하는 주장하는 것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이고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논쟁의 격렬함은 이미 도를 넘어서 상대 기술자에 대고 욕설을 퍼붓고, 한쪽에서는 고소장을 접수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우선 관련 뉴스를 보자. 공정을 기하기 위해 양쪽 뉴스를 하나씩 소개해보자. 우선 삼성쪽의 주장이다. (출처)

삼성전자는 LG전자와의 3D TV 기술논쟁과 관련해 자사의 액티브 셔터안경 방식의 손을 들어준 미국 전문가의 평가를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3월 24일 "미국 영상화질 전문가 조 케인(Joe Kane)이 운영하는 조 케인 프로덕션(JKP;http://www.jkpi.net/3D.php)에 삼성전자와 LG전자 3D TV 화질 시험을 의뢰한 결과, LG전자의 패시브 안경 방식으로는 풀HD급 화질을 구현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밝혔다.

JKP는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올린 평가글에서 "패시브 방식은 3D는 물론 일반 2D영상에서조차 풀HD 해상도를 구현하지 못한다"며 특히, "패시브 방식 3D TV는 선명도를 조정해도 이미지를 또렷하게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원래 해상도의 3분의 1 수준도 구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반면 "삼성전자의 액티브 방식 3D TV에 대해선 3D와 2D 모두에서 풀HD 해상도를 구현한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LG전자와 3D TV 기술 논쟁이 격화되면서 삼성전자 엔지니어들이 이달초 내부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JKP측에 연구를 요청했으며, 조 케인은 화질의 대가"라고 밝혔다.



이제 이 뉴스에 대응하는 엘지측의 뉴스를 보자. (출처)

3월 24일 LG디스플레이는 공식입장을 통해 "조 케인이 화질 분야의 전문가임은 인정하지만, 다만 개인적 의견일 뿐, 이번 평가의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편광(FPR) 3D TV는 이미 세계적인 품질평가기관인 인터텍과 중국 제3연구소로부터 1080 해상도(풀HD)를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며 "중국 정부 기관인 중국전자표준화연구소가 LG 디스플레이의 FPR 패널을 채용한 LG전자의 3D TV가 1920X1080 해상도를 구현한다는 평가 결과를 내렸고, 이에 따라 중국전자상회가 발행하는 'Full HD 3D'를 사용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은 바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적인 품질평가기관이나 정부 기관의 평가 결과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삼성전자측에 화살을 돌렸다. 이에 더해 LG전자측도 "조 케인은 삼성전자 TV 화질과 관련해 자문역을 했던 인물"이라며 "삼성이 말하는 세계적 공인기관이 이곳인지 반문하고 싶다"고 맹공을 펼쳤다.



우선 기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양쪽의 논점을 아주 간략화시켜 보자. 삼성과 엘지가 각각 3D를 구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둘다 안경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삼성의 방식은 두 개의 영상을 시간차를 두고 쏜다. 그리고는 안경 안에 있는 셔터가 그 시간에 맞춰 한쪽을 차단하고 한쪽을 보내준다. 셔터가 기계적으로 움직이므로 셔터 글래스 방식, 혹은 액티브 방식이라고 부른다. 이 방식은 밝기와 선명도가 높은 화면을 볼 수 있지만 기계가 차단하는 방식이라 약간의 소음이 있을 수 있고, 눈이 좀더 쉽게 피로해진다.

엘지의 방식은 두 개의 영상을 동시에 쏘지만 빛의 파장을 달리해서 쏜다. 그리고 안경 안에 있는 편광필터가 이 파장이 다른 두 개 영상을 걸러내서 보여준다. 움직이는 부분이 없으므로 편광안경식, 혹은 패시브 방식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아바타는 바로 이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좀더 편안한 화면을 볼 수 있지만 편광필터로 절반의 빛을 걸러내게 되므로 밝기와 선명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삼성과 엘지의 공허한 3D TV 기술논쟁.

양쪽이 모두 장단점이 있기에 어느 쪽도 확실한 정답이 아니다. 차라리 안경이 없이 구현되는 홀로스코픽 방식이나 시차 방벽을 이용한 방식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삼성이나 엘지는 무조건 자사의 방식이 가장 우수하며 진정한 풀HD를 구현할 수 있다며 주장하고 있다. 나름의 근거는 있지만 솔직히 소비자 입장에서는 공허하고 쓸모없는 기술논쟁일 뿐이다.

지금 소비자가 3D TV에 간절히 원하는 건 해상도를 높여달라든가, 눈이 피곤하다든가 이런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비싼 가격을 낮춰달라는 것도 아니다. 3D TV를 통해서 볼 만한 컨텐츠를 많이 만들어 지속적으로 공급해 달라는 것이다. 어느 것이 우수한 방식인지 판단하기 전에 오랫동안 볼 거리라도 있어야 뭘 판단하고 불편을 느낄 것 아닌가?

위의 뉴스에서 양쪽 모두 모순이 있다. 삼성은 자사 화질 자문을 했던 사람의 의견을 객관적 의견처럼 내놓고 있다. 엘지는 선진국도 아니고 3D TV 기술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 중국 연구소와 중국정부의 발표를 내세우고 있다. 어느 쪽이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는 마찬가지다.


굳이 어느 한쪽의 편을 들고 싶지도 않다. 내 개인적 의견으로 따지면 당장의 화질은 분명 엘지 방식보다 삼성 방식이 더 좋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안경속에서 셔터가 움직이는 삼성 방식은 미래가 없다. 전자제품의 발전은 항상 기계적인 것을 배제하고 전자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쪽으로 발전되어 왔다. 최초의 텔레비전은 영국의 과학자가 기계식으로 만들었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 미국에서 브라운관을 이용해서 만든 티비만 기억한다.

어쨌든 지금 볼 거리가 없어 활기가 없는 3D TV 시장에서 양 사가 저런 열정을 가지고 볼만한 컨텐츠를 만들거나 2D를 3D로 변환하는 원천기술이나 알고리즘을 가지고 저런 논쟁을 벌이는 걸 보고 싶다. 배가 고파 빵을 달라는 사람에게 어떤 옷을 입히면 좋을까 하고 싸우는 장면을 보는 듯한 지금의 논쟁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