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최초로 한국에 들어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 나는 한국이 이동통신 강국이며 동시에 매우 발달한 기기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외국 단말기가 함부로 국내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들어왔다. 삼성 휴대폰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노키아를 추격하고 엘지가 그 뒤를 이어 점유율을 늘려가는 상황에서는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은 한국 시장 자체가 매우 제약이 많고 폐쇄적이어서 외국업체가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 공통 플랫폼 규격인 위피의 의무화를 비롯해 외국산 휴대폰의 국내진입을 막는 장치는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아이폰을 사람들이 간절하게 원하게 되는 만큼 그런 규제들은 종종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많은 규제를 깨고 시간을 들여 아이폰3GS가 들어오고 아이폰4가 이어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아이패드란 태블릿이 들어오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바로 옆나라인 일본만 하더라도 미국에 이어 거의 두번째에 가깝게 모든 애플 제품이 들어오는데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라인 한국은 늘 늦었다. 심지어 아이패드는 중국보다도 늦게 들어왔다.

나는 그것 때문에 이번 아이패드2 역시 늦게 들어올 거라 짐작했다. 인기가 없어서 물건이 남아돈다면 모를까 물량이 부족하다면 한국은 또다시 중국보다 늦게 들어올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당히 상황이 달라졌다. (출처)


애플은 22일(현지시각) 4월 중 홍콩·한국·싱가포르와 다른 추가 국가에서 아이패드2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발매일, 가격, 판매처 등 구체적인 정보는 함께 공개하지 않았지만 국내에선 SK텔레콤과 KT를 통해 4월 말 시판될 예정이다.

애플은 25일부터 시작되는 해외 판매를 발표하며 한국을 포함한 추가 발매국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다. 지난 11일 미국 내 아이패드2 시판을 시작한 애플은 25일 최소 26개 국가에서 동시에 아이패드2를 시판할 예정이었으나,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본 일본이 이번엔 제외됐다.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아이패드2가 전 세계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잡 스 CEO는 “미국에서의 아이패드2 인기에 놀라고 있으며 세계 고객들로부터 ‘아이패드2를 구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말을 듣고 있다”며 “아이패드가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쟁사들이 여전히 기존 아이패드를 따라 잡으려고 애쓰는 동안 우리는 아이패드2로 또 한 번 판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어째서 갑자기 상황이 바뀐 것일까. 출시가 앞당겨져 한국이 빨리 아이패드2를 쓰게 된 점이야 기쁘지만 그 원인이 궁금하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보자.



아이패드2, 빠른 한국출시가 가능한 이유는?

1) 애플이 한국시장에 대한 인식을 새로 했다. 그동안 한국은 애플 제품의 수요가 적었다. 시장 자체가 작기도 하지만 매킨토시를 비롯한 컴퓨터, 아이팟 등의 제품에서도 그다지 많이 팔지 못했다. 따라서 아이폰도 늦게 출시된 한국에 대해 수요가 적은 곳으로 분류하다가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매출이 급속히 증가하는 걸 확인할 결과일 수 있다.

2) 예상치못한 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인해 아시아에서 제일 처음 물건을 줄 예정이던 일본에 아이패드2를 팔 수 없게 됐다. 따라서 그 물량을 소화해줄 나라가 필요한데 마침 한국이 뽑혔다. 중국이나 홍콩도 가능하긴 하지만 일본에서 거리가 가장 가깝고 소비가 왕성한 나라는 한국이다.

3) 새롭게 가세한 SKT와 KT에서 적극적으로 애플에 출시를 요청하며 일정 수량의 판매를 장담한 결과이다. 아이패드의 인기를 이미 경험한 터라 후속작인 아이패드2의 성공과 수요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대충 이 세 가지 정도가 이유인 듯 한데 내 생각에는 굳이 어느 한 가지만이 요인이라기 보다는 복합적으로 세 가지가 모두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씁쓸한 점은 바로 2번이다. 일본 시장은 본래 아시아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 시장으로 놓는다. 그만큼 서구 회사들이 중시하고 대접해주는 곳이다. 소득도 높을 뿐더러 일본이란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일본에서 대지진 때문에 당분간 전자기기를 신나게 판매할 분위기가 아니니 그제야 한국에 빨리 물량을 공급받는다는 의미다. 생각해보면 대지진에 정신이 없는 일본 소비자들이 굳이 아이패드2 매장 앞에 줄을 서겟는가? 아니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르며 아이패드2를 껴안겠는가? 애플이 자랑하는 문화 마케팅도 전혀 할 수 없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이나 일본 프로야구 경기까지도 취소되고 연기되는 상황이다.

애플 특유의 마케팅을 할 수 없으니 아예 일본 발매를 연기하고 한국에서 대신하자는 건, 첫째로 꼭 일본의 불행이 한국의 행복이 된 것만 같아서 씁쓸하고, 둘째로 겨우 우리가 일본 대신 정도의 대접 밖에 못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 다른 요인은 몰라도 2번 요인은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해도 애플에게 한국시장의 위상이 좀 더 올라간 것만은 사실인 듯 싶다. 일본 다음이 중국이나 홍콩이 아니고 한국이라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아이패드2의 빠른 발매에 나 역시 기쁘다. 이것을 기회로 국내 태블릿 업계가 보다 싸게 좋은 제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이기 위해 더 강하게 경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