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 영화계에서 두드러지는 일이 있다. 완성된 영화를 거침없이 비평하고 냉혹하게 점수를 매기는 영화평론가 사이에도 암묵적인 차별이 있다. 바로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비교할 때, 한국영화를 보다 후하게 취급해주는 일이다.

어떻게보면 당연한 일이고 이해도 간다. 한국영화는 헐리우드 등 외국영화에 비해서 자본도 부족하고 역사도 짧고 환경도 열악하다. 그런 상황에서 악착같이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하는 것이니 인간적으로 더 후해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내 나라 영화 아니던가.



나도 어떤 특정분야에 있어서는 국내기업에 보다 후한 점수를 주는 일이 있다. 적어도 너무 냉혹한 비판은 피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무슨 내가 해당기업에게 돈을 받거나 향응을 받아서가 아니다. 강자와 약자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판하는 건, 재벌회장님과 노숙자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만큼 잔인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국내 전자책 사업에 대해 나는 보다 애정어린 시선을 가지고 있다. 다음 뉴스를 보자. (출처)


애플사의 아이북스(ibooks)를 뛰어넘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책 기술이 국내 기업에 의해 개발됐다. 내일신문의 IT 전문 계열사인 내일이비즈(대표 김선태)와 석탑출판(대표 장민환)은 3일 새로운 개념의 전자책 구현기술인 '내일북'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내일북은 PDF와 epub방식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극복했다.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사용자 시력에 따른 글자크기 자동 확대' 기능을 탑재함으로써 종이책의 판형을 살리면서도 확대와 이동을 최소화 한 것이다.

또 내일북은 기존 전자책이 모두 2차원 평면에서 구현돼 종이책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한계도 극복했다. 3차원 입체형으로 종이책의 모양을 그대로 살려 책의 크기나 두께 등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도록 했다. 여기에 '4차원 순간이동' 기능을 탑재해 종이책에서처럼 읽던 페이지나 지난 페이지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한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로 동시 읽어주기 기능, 동영상 삽입, 밑줄·메모·책갈피 등 5가지 주석 처리와 검색 등 새로운 기술도 선보였다.


내일북 시스템은 일반 컴퓨터와 아이폰, 아이패드, 갤럭시탭 등 안드로이드 모바일 기기 대부분의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다. 기술 개발을 주도한 내일이비즈 이해성 부사장은 "내일북의 탄생으로 독자들은 비로소 고품격 전자책을 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부사장은 또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전자책 구현기술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세계 전자책 시장을 우리기술로 선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약하자면 국내업체가 매우 우수한 전자책 파일 포맷을 개발했으며 많은 활용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세계 최고' 라든가, '4차원 순간이동' 등의 용어가 좀 자극적이고도 재미있다.

과연 내일북이 개발한 이 전자책 포맷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아직 시연 동영상 조차 공개하지 않았기에 잘 모르겠다. 사진 한 두장으로는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섣부른 찬양도 비판도 하기 이르다. 보통 아무런 상관도 없는 외국업체였다면 조용히 무시했거나 냉혹하게 비판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겠다.


사실 마케팅이란 게 어쨌든 관심을 받아야 하는게 우선이기에 과장과 큰소리는 늘 따라다닌다. 천하의 애플조차도 늘 별 것 아닌 기술에도 어썸을 외치고 다닌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니 새삼 이 국내업체를 건방지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그렇기에 그저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만 보기로 하자.

야심찬 국내 전자책 포맷, 성공의 조건은?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 라는 말이 있다. 국내업체이기에 세계 최고를 개발할 수 없다는 논리도 이상하다. 또한 대기업도 아닌데 세계 기술을 어찌 선도하냐고 말하는 것도 우습다. 나는 국내업체에 조금 후한 시선을 주고 싶다. 그러기에 나름 혁신적 제품을 발표하면서 이런 큰소리를 치는 자체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용감해서 좋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만이 아닌 다른 요소가 있어야 한다. 바로 포맷을 빨리 보급해 국제표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기업이니까 단지 포맷만 개발해놓고, 최고니까 당연히 우리 것을 전부 쓰겠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기술이 최고여서 표준이 되는 게 아니다. 표준이란 대체로 가장 무난하고 적극적으로 많이 쓰는 기술이 된다. 표준이 되면 개량이 가해지므로 자연스럽게 기술수준도 최고에 가깝게 올라간다.

기존 포맷에 비해 여러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이 포맷으로 개발자와 작가들이 더 많은 획기적 컨텐츠를 만들어 올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광고를 하든, 개별협상을 하든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쓰도록 해야하며, 그 가운데 새 포맷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컨텐츠가 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세계 최고의 포맷이 되는 방법이며, 국내 전자책 포맷이 성공할 조건이기도 하다.



반대로 만일 컨텐츠 제작에 대한 노력없이 그저 세게최고라는 이 기사를 끝으로 더이상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포맷은 실패한다. 또한 세계 최고가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포맷과 표준이란 아무리 우수해도 쓰는 사람이 많아야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 과 '4차원 순간이동'을 강조할 정도라면 최대한 그것을 살린 컨텐츠도 분명 화려하고 재미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부지런히 그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책과 잡지를 만들어 보여주기 바란다. 그것이 성공의 필수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