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s 애플, 이 둘의 이야기를 해보자.
적어도 전자와 컴퓨터에 관해 두 회사는 엄밀히 말해서 동시대에 생긴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완벽하게 공정한 비교란 불가능하다. 굳이 비교해서 말하자면 고등학교생과 중학생 정도의 세대차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애플은 IBM이 완벽하게 시장을 장악하던 중대형 컴퓨터의 시대가 저물고 마이크로 프로세서와 칩으로 소형화되고 단일화되는 소형 컴퓨터로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에 생겨났다. 이전까지 대형컴퓨터에 연결된 단말기를 빌려 연산작업을 하던 시기였다. 개인용 컴퓨터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컴퓨터라고 하면 하얀 작업복을 입은 엔지니어들이 일부러 컴퓨터실로 출근해서 시간을 배정받아 써야만 하던 시절 말이다.


애플은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의 주도 아래, 컴퓨터의 모든 요소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다. CPU와 메모리가 달린 기판부터, 화면표시를 위한 프로세서, 그 안에 들어가는 운영체제와 저장을 위한 디스크 드라이브까지 전부 직접 만들었다. 심지어 소음과 발열이 적은 파워 서플라이는 스티브 잡스가 직접 다른 기술자와 교섭해서 제작해 오기도 했다.

애플의 창립과 컴퓨터 제작에 대해서는 다른 좋은 책들이 나와있다. 자세한 역사에 대해서는 시중에 나온 책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대부분 찬양적인 관점인데 다소 비판적 관점이 궁금하다면 필자가 쓴 '애플을 벗기다(웅진 지식하우스)'를 읽어보기 바란다.



그럼 삼성은 어떨까? 우선 얼마전 뉴스를 한번 인용해본다. (출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말 임원들에게 "과연 삼성이 제대로 컴퓨터를 만든 적이 있느냐"고 질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곽 위원장은 업무보고에서 "이 회장이 작년 11월 사장단과 미래전략실 간부들에게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에만 주력해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 관련 기술이 부족하고, 기본 프로그램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말을 했다"고 전하고 "우리나라가 IT 기술 강국이라지만 핵심 기술에선 정부의 대규모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은 애플이 갖은 고생 끝에 애플2를 만들어 8비트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만들어 엄청난 성공을 거둘 때, 컴퓨터 사업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삼성전자의 시작은 이건희 회장이 고 이병철 회장에게 반도체 공장을 인수해서 전자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던 건의에서 시작됐다. 신중한 이병철 회장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이건희 회장은 개인적으로라도 해보겠다고 말해서 사업을 개시했다. 이렇게 삼성전자는 시작 목적이 완제품인 컴퓨터가 아닌 반도체 칩이었다.



이후 미국에서 애플2 성공의 열기가 한국까지 불어닥쳤다. 또한 MS의 빌게이츠가 일본 업체와 손잡고 고안한 MSX규격 컴퓨터가 일본제 컴퓨터의 한 흐름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당시 MSX는 호환성이 부족한 8비트 컴퓨터를 향해서 통일 하드웨어 규격을 제시하고 운영체제는 MS의 도스를 약간 고친 MSX-DOS를 써서 소프트웨어 호환성을 주었다. 규격만 만족하면 누구든 생산이 가능한 것은 마치 요즘의 구글 안드로이드와 비슷하다. 국내에서는 대우전자에서 MSX와 그걸 게임기로 고친 재믹스를 시판했다.

삼성은 애플2를 복제생산하거나 MSX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대신 제 3의 길을 선택했다. 미국의 휴렛팩커드(HP)와 제휴해서 나름 독자적인 규격에 가까운 SPC 시리즈를 내놓고 8비트 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 컴퓨터실에는 그래서 SPC와 MSX가 섞여서 보급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마도 이때가 그나마 삼성이 가장 독자적으로 컴퓨터를 만들려고 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이때 삼성의 SPC시리즈는 범용으로 우수한 칩인 자일로그사의 Z80을 쓰고 보조기억장치인 카세트테이프 장치를 내장하고 있는 등 장점도 꽤 있었다. 다만 애플2나 MSX와의 호환성이 부족했기에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 자체가 너무 적었다.



따라서 말 그대로 교육용으로 쓸 수 밖에 없었다. 잡지 안에 기록된 베이직 프로그램을 쳐서 그 실행 과정을 보며 즐기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을 할 수 없었다. 애플 사용자들이 진보된 5.25인치 플로피 드라이브로 다양한 유틸리티를 쓸 때, MSX사용자들이 압도적인 컬러 그래픽과 풍부한 사운드로 팩과 3.5인치 디스크를 이용해 재미있는 게임을 할 때, 삼성의 SPC에는 슬프게도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제대로 어떤 컴퓨터를 만든다는 건 단지 범용 부품을 단순 조립해서 껍데기를 만드는 과정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거라면 당시 세운상가의 전파상 수준의 1인 기업조차 애플2복제품을 만들었으니 컴퓨터를 만든 셈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컴퓨터를 만든다는 건 핵심기술을 습득하고 배워가면서 운영체제나 소프트웨어 기술력까지 쌓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지원하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하드웨어만 달랑 내놓았을 뿐,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 삼성의 지원은 너무도 미약했다. 또한 보급대수가 적고 독자규격에 가깝기에 다른 회사나 개발자가 SPC 시리즈 용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주지도 않았다.

삼성이 독자적으로 컴퓨터를 기초부터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이때였다. 아직 거인 IBM이 16비트 PC를 들고 나오지 않았던 80년대 초중반은 중소기업들의 황금기였다. 수없이 많은 도전들이 행해지고 소비자들은 뭔가 신기한 것이 있으면 그걸 기꺼이 돈을 주고 샀다. 이런 좋은 시기에 삼성전자도 하드웨어까지는 나름 범용 부품을 조립해서 어떻게든 만들어냈다. 문제는 그 안에 들어갈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애플 역시 소프트웨어를 전부 만든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용으로 도스를 만들었고, 베이직을 만들었다. 기반이 되는 구조를 전부 만들면서 천천히 다음 세대를 위한 인력도 양성하고 있었다. 잡스는 애플2가 잘 팔리는 와중에서도 팔로알토의 연구소에서 본 혁신적인 GUI운영체제(그래픽 기반으로 동작하는 운영체제)를 구현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인력들을 모아 맹렬히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삼성은 과연 이 중요한 시기에 무엇을 했을까. SPC 1000에 이어서 1500이라는 하드웨어만 내놓고 끝이었다. 거기에 맞는 삼성 독자의 운영체제를 만들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독특한 주변기기나 비즈니스용 킬러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지도 않았다. 한글지원조차 속시원하게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인력을 모아 차세대 컴퓨터를 설계하거나 만든 것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저 위에서 말한 이건희 회장의 말과 일치한다.

과연 삼성이 제대로 컴퓨터를 만든 적이 있느냐?

이건 나도 삼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자 안타까움이다. 삼성이 분명 애플보다 십년 남짓 늦게 시작했던 건 사실이다. 또한 꿈과 희망의 아메리칸 드림이 있었던 당시 미국에 비해 상황이 열악한 한국에서 힘겹게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혼자서 아무런 돈도 없이 시작해 간신히 애플2를 팔아 돈을 벌며 그걸 기반으로 다시 매킨토시 개발에 열중하던 스티브 잡스의 상황이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동시기의 삼성전자를 보자. 당시 삼성전자를 이끌던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궤도에 올려놓았으며 어느 정도 정부의 뒷받침을 받던 삼성그룹의 후계자라는 지위와 돈이 있었다. 만일 이때 정말 컴퓨터를 제대로 만들겠다는 마음만 있었다면 못할 게 없었다. MS의 빌게이츠와 교섭해서 도스같은 소프트웨어 기반을 배우고, 일본업체인 소니나 파나소닉, 산요 등과 교류해서 하드웨어 기술을 배우는 선택도 가능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아올려가며 컴퓨터 시장에 안착했더라면 적어도 오늘날 삼성이 이렇게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하나에 목을 매야 되는 사태는 없었을 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삼성은 이때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주력하지 않았다. 삼성에게 있어서 이 시기는 부품산업인 반도체, 그 가운데서도 메모리에 모든 자원을 쏟아붓던 시기였다. 일본업체를 이기고 메모리 시장의 강자가 되기 위해 삼성은 컴퓨터를 포기했다. 시장성이 악화된 SPC는 조용히 버려졌다. 이후 교육용 컴퓨터로 16비트가 나오고 MS와 애플이 전쟁을 벌이고 매킨토시와 넥스트가 나올 때에 삼성은 단지 국내 굴지의 완제품 PC조립업체가 되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오늘날 손안의 작은 개인용 컴퓨터란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자 뼈아픈 반성을 하고 있다. 그것도 바로 그때 삼성전자를 이끌던 이건희 회장의 입에서 말이다.

삼성이 제대로 컴퓨터를 만든 적이 있을까?



누가 말하기를 신은 공평하다고 했다. 돌이켜보건대 삼성에게도 분명 기회는 있었다. 여건은 달랐지만 스티브 잡스가 오로지 컴퓨터에 사활을 걸었을 때, 삼성에게도 몇 가지 좋은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삼성은 그 기회를 놓쳤고 대신 메모리와 부품의 강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포기했던 선택의 후유증이 지금 무려 30년 뒤에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과연 삼성에게 있어 30년 전의 선택은 최선이었을까?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