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노트북이나 대기업 PC를 유심히 보면 <Intel inside>라 붙어있는 작은 마크 하나를 볼 수 있다.

인텔 인사이드. 이것은 얼핏 생각하면 그저 별 의미없는 상표 하나로 간주할 수도 있다. 보통 우리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 뒤에 나오는 자막에 표시된 관련 업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심지어 방금전까지 귀기울여 들었던 사운드를 처리한 기술 <돌비 디지털>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은 생각이 없다.

사실 컴퓨터를 쓰면 그저 처리속도가 빠르냐, 메모리는 충분하냐, 게임은 잘 되냐. 정도가 관심이다. 그 안의 CPU와 각종 칩셋이 어떤 회사 제품이고 어떤 특성을 가지느냐는 잘 따지지 않는다. 그걸 따질 정도가 되면 당신은 이미 컴퓨터 전문가 소리를 주위에 듣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어쨌든 인텔은 우리가 늘 쓰는 PC와 노트북의 CPU 가운데 80프로 정도를 공급하는 거대 반도체 업체다. 경쟁사인 AMD와 VIA등이 있긴 해도 인텔은 PC 용 칩셋의 대부분을 공급한다. 이런 인텔이 자사의 위상을 높이는 일종의 인증을 위해 만든 것이 인텔 인사이드란 상표다.

인텔인사이드 전략은 인텔의 CPU를 장착한 시스템에 <intel inside>란 로고를 부착하는 판매전략이다. 보통 제품 안에 감춰진 부품은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인텔은 여타 호환칩을 만드는 AMD 등과의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하기에 이 상표를 부착하는 캠페인에 전력을 쏟았고 결국 이것은 성공했다.

현재 PC용 CPU 시장은 인텔의 독무대다.

최초의 4004란 전자계산기용 CPU로 시작한 인텔은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그 중앙처리장치를 인텔에서 공급받기로 결정하면서 찬란한 번영을 누리기 시작했다. 시대에 따라 약간의 흔들림은 있었어도 인텔은 언제나 거인이고 승자였다. 특히 인텔의 주력칩인 X86칩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찰떡궁합을 보이며 <윈텔진영>이라는 단어까지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인텔의 아성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미래의 지향점인 모바일 세상이 새로 열렸기 때문이다.

모바일은 노트북과는 다르다. 모바일이란 스마트폰, 타블렛, MID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 쓰이는 운영체제는 IOS와 안드로이드, 윈도우 모바일7이 있다. 타블렛과 MID, PMP도 임베디드 리눅스 정도가 추가될 뿐 대략 비슷하다.


뭔가 이상하지 않는가? 묘한 위화감이 든다면 당신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그렇다. 이 목록에는 우리가 너무도 많이 들어온 윈도우 시리즈가 하나도 없다. 윈도우 XP, 윈도우 비스타, 윈도우7 같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대표적 운영체제는 모바일에서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굳이 말해 윈도우 모바일을 칭할 수는 있지만 점유율이 워낙 낮은 데다, 이것조차 데스크탑의 윈도우 와는 상당히 다르다.

모바일 기기에서 윈도우에게 마련된 자리는 없다. 특별히 우대해 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무겁고 느리기만 한 윈도우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윈도우와 단단히 결합한 인텔의 고민이 숨어있다.

모바일 시장을 거의 평정한 CPU는 ARM 계열 칩이다. ARM은 영국 캠브리지에 기반을 둔 칩 설계업체로 애플도 참여했던 조인트벤처 회사다. 저전력 모바일 기기를 목적으로 탄생했기에 적은 전력으로 비교적 좋은 성능을 내는 장점이 있다. 특히 이 회사는 직접 생산을 하지 않는 순수 설계 회사다. 즉 설계 기술만 라이센스 해주면 이걸 받은 각 회사가 알아서 수정해 공장에 위탁생산을 맡겨 만드는 식이다.

문제는 인텔의 확고한 주력인 X86 칩이 모바일 기기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전력소모가 너무 많아 비효율적이다. 그나마 저전력을 목적으로한 초저전력 코어 시리즈나 넷북용 아톰 등을 만들고는 있지만 ARM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더구나 윈도우에 가장 적합하다는 인텔의 장점이 여기서는 단점이 되어 버렸다.


솔직히 그동안 인텔은 비교적 기득권에 의존한 비즈니스를 해왔다. 비슷한 공정과 크기, 기능을 가진 칩끼리 비교할 때 인텔칩에서는 윈도우가 돌아가고 다른 칩인 파워PC나 셀 등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면 소비자의 선택은 필연적으로 인텔로 기울수 밖에 없었다. 같은 X86인 AMD와의 경쟁에서도 결국 윈도우를 얼마나 빨리 돌리냐만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모바일에는 윈도우가 없다. 결국 인텔칩은 아무런 어드밴티지가 없이 싸우게 되는 셈이다. 거기에 고질적인 전력소모 문제가 겹치게 되니 ARM의 우세는 바뀌기 어렵게 고정되어 간다. 뒤늦게 인텔은 윈도우 의존을 탈피해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모블린을 비롯해, 마에모 프로젝트를 거친 운영체제 미고(Meego)는 인텔칩으로 안드로이드와 리눅스를 동시에 구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모바일에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절부절하는 건 인텔만이 아니다. 윈텔연합은 점점 깨져간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ARM의 라이센스를 얻었다. (
출처 ) 보통 이런 라이센스를 얻는 의미는 호환칩셋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통상 하드웨어를 만들지 않는 MS의 속성상, 이것이 윈도우 시리즈, 혹은 그 파생형을 ARM에서 구동시키기 위한 준비작업일 수도 있다. 자칫하면 인텔은 윈도우가 가장 잘 돌아가는 칩을 만든 다는 위치도 잃어버릴 수 있다.

인텔은 아직 모바일 시장에서 명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경쟁이 가능한 아톰 듀얼코어는 그보다 상위의 셀러론 시장을 잠식할 우려 때문에 모바일에 내놓지 않다가 최근에야 채택을 허락했다. 그런데 스마트폰에서는 이미 안드로이드 3.0 이 듀얼코어 ARM으로 돌아간다는 루머가 파다하다. 태블릿 시장은 가파르게 상승하며 넷북부터 인텔의 시장을 먹어 들어가고 있다.

애플은 A4부터 아예 독자개발 칩을 쓸 태세를 보이고, 안드로이드는 ARM과 너무도 관계가 좋다. 결국 인텔이 기댈 곳은 윈도우 모바일7 뿐인데 이쪽은 점유율도 작을 뿐더러 경쟁자가 또 있다. 바로 엔비디아가 내놓은 <테그라>다. 저전력만으로 그래픽 가속 성능이 탁월한 이 칩에 비하면 인텔의 칩은 가격대비 경쟁력이 좋은 편이 아니다.


인텔은 오랫동안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뿜어낸 CPU계의 거인이다. 지금도 PC시장에선 굳건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PC시장 자체가 축소될 경우다. 모바일 시장이 커지고 파생상품을 만들어냄에 따라 전통적 PC의 의미가 점점 옅어진다. 클라우드 컴퓨팅 시대가 오고, 타블렛이 가벼운 노트북 용도를 대신하게 되면 PC는 서버급 시장으로 조용히 물러날 수 있다.
 
인텔 인사이드는 모바일 시대에도 유효할까?

그때가 되었을 때 과연 모바일 기기에 인텔의 칩셋이 쓰이고 지금처럼 자랑스럽게 상표가 붙어있을까? 혹시 그 자리에 ARM Inside가 대신 붙어있지는 않을까? 인텔의 고민은 바로 그 미래에 있다. 미래를 위해 인텔은 좀더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확실한 매력이 있는 제품을 투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머지않아 인텔을 기업의 중대형 컴퓨터 시장에서나 쓰이는 부품회사로 기억할 날이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