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래동화 가운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마을에서 제일 가는 부자를 찾아간 가난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부자에게 어떻게 하면 자기도 부자가 될 수 있는 지 물었다.
부자는 청년을 높은 절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그 절벽에 삐죽 나와있는 나뭇가지를 붙들고 매달려보라고 시켰다. 청년이 시키는 대로 하자 부자는 말했다.
그럼 한 손을 놓아보시오. 청년은 절벽에서 떨어질까 겁이 더럭 났지만 잠자코 따랐다. 그러자 부자는 다시 말했다. 나머지 한 손도 놓아보시오.
미쳤어요? 이걸 놓으면 떨어져 죽는다고요! 청년이 반문했다. 그제야 부자는 대답했다.
그 나뭇가지를 바로 돈이라고 생각해보시오. 그게 바로 부자가 되는 비결이오.

결국 한번 들어온 돈을 목숨처럼 여기고 안 놓아주면 저절로 부자가 된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다. 그런데 왜 내가 IT를 다루면서 이런 관련없을 동화를 이야기할까. 바로 이제부터 애플의 현금 보유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애플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마이크로소프트(MS)보다 더 많은 현금보유액을 비축해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애플은 올해 3월 현재 417억 달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 397억 달러의 MS를 제치고 업계에서 가장 많은 현금보유액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애플과 MS, 시스코, IBM 등 미 10대 IT기업은 지난해 경기침체 이후 650억 달러 이상의 현금보유액을 확충했다. 이 기간 매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현금 보유를 크게 늘렸다.

머니투데이 조철희 기자


애플은 엄청난 현금보유고를 가지고 있다. 돈이 이렇게 많으니 은행빚이 한푼도 없음은 물론이다. 시중에 나도는 농담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은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가는게 아니라 빌려주러 간다는 내용까지 있을 정도다.

애플이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는 이유는?

단지 기업규모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현금 보유고가 많은 건 아니다. 돈이 많이 오가지만 금융기관이나 투자회사는 오히려 현금을 많이 가지면 안된다. 가능한 많이 빌려주고 이자를 붙여 많이 받고, 또 빌려주고 하는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건설회사라든가 전자회사도 원래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필요에 따라 은행 등에서 빌리고 나중에 제품판매로 이익이 나면 상환하는 구조가 대부분이다.


MS가 현금을 많이 보유하는 경우는 사업의 다각화를 위한 투자자금의 성격이 짙다. 필요에 따라 검색업체 야후를 인수하기도 하고, 작은 기술기업을 사들이는 등 MS는 순간적으로 돈 쓸 곳이 많다. 또한 세계 PC운영체제의 90프로 가량을 차지하는 만큼 각 나라의 지사유지 등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애플은? 애플은 솔직히 MS에 비하면 작은 회사다. 겸손의 의미지만 스티브 잡스는 최근 D8에서 <애플은 세상의 모든 자원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아니다.> 라면서 넉넉치 못한 회사라고 말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회사를 유지하기 위한 운영자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애플은 공격적으로 마구 회사를 사들이면서 분야를 확장하는 타입도 아니다. 사실 요즘의 애플이 마음만 먹으면 사들이지 못할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구글 같은 기업하고만 맞붙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난 2008년 외국 컬럼 일부 내용를 보자.

사실 애플이 디즈니를 인수하거나 디즈니와 합병해야 한다는 주장이 꽤 있었다. 합리적인 아이디어다. 혹은 애플이 음반사를 하나 합병하여 음반 사업 방식을 뒤바꾸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애플의 사고방식은... 서로를 인수하는 방식이 아니다. 인수만 했다가는 기술충돌과 문화 충돌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가 맞이했던 것과 매한가지다.


아직까지도 애플은 디즈니를 인수하지도, 음반사를 구입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현금보유고를 쌓아두고 있다. 그럼 애플이 이 많은 현금을 가지고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일까?

1. 애플의 기업구조와 매출구조 자체가 혁신제품으로만 이루어진다. 애플에게는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포장만 바꾸고 광고만 바꾸면 그만인 <코카콜라>같은 제품이 없다. 단 1년만 방심해도 추월되어 버리는 살벌한 IT업계의 제품 가운데서도 최첨단에 서 있다.

과장해서 말하면 애플은 연구개발을 통한 혁신을 멈추면 쓰러지는 구조다. 마치 항상 달려야 하는 경주마 같은 체질인데 그렇다고 스티브 잡스가 안정적 사업을 노린 다각화를 시도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애플에 열광하는 팬보이들 조차 혁신제품 아니면 거들떠도 안본다. 예를 들어 애플에서 내놓은 블루투스 키보드나 컴퓨터 모니터는 뛰어난 품질이긴 해도 그걸 가지고 누구도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처럼 열광해주지 않는다.

이런 혁신에는 엄청난 연구개발비가 든다. 언제 성공할 지도 모른다. 열 가지를 연구하면 여덟가지는 쓸모 없고, 한가지는 미래에나 쓸모있을지 모르며 나머지 한가지가 간신히 현재 상용화 할 수 있다. 더구나 스티브 잡스는 완벽주의자다. 연구개발이란 관점에서 이런 사람의 마음에 드는 혁신을 이루기 위해 드는 비용이란 대단한 비효율이다. 돈이 아무리 있어도 모자랄 수 밖에 없다. 애플의 연구개발이란 어쩌면 수익도 거의 없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 들어가는 돈과 비슷한 정도의 효율인지 모른다.


2. 애플은 그래서 자사 제품의 특허에 집착하고, 소송을 많이 건다. 애플의 변호사단은 그래서 고연봉을 받는 대단한 능력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을 상대로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한다. 당연히 이런 법률적 기구들에 들이는 돈도 만만치 않다.

3. 예전에 주주회의에서 배척당한 뒤 스스로 애플을 퇴사한 스티브잡스는 <쫓겨났다>라는 분노를 가지고 있다.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나가야 했던 그때 잡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힘이 모자라서 졌다는 생각이었을 거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모든 것을 말한다. 애플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각광받는 애플이라고 해도 월가나 다국적 투자회사의 먹이감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오히려 더 군침 흐르는 먹이감이다. 주식회사인 이상 주식을 50.1프로 가량만 소유해도 게임은 끝난다. 적대적 인수합병의 먹이가 되지 않으려면 돈을 축적하는 방법이 가장 쉽고 빠르다.

대략 위와 같은 이유로 애플에게는 많은 현금이 필요하다.

현재 애플은 아이폰을 비롯한 확실한 수익모델이 뒷받침 해주고 있다. 애플의 미래는 탄탄해보인다. 그러나 애플의 미래에도 불안요소는 있다.


애플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스티브 잡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애플의 팬이라기보다는 잡스의 팬에 가까운 팬보이들이 대거 이탈하면? 그래서 더이상 시장에서 각광받는 제품을 내놓지 못하게된다면?

과연 그때에는 이 많은 현금보유고는 여유를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그 돈을 노리고 월가의 하이에나들을 몰려들게 만드는 독이 될 것인가? 실로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내가 시작할 때 언급한 저 한국 전래동화처럼 애플은 그럴 때 절벽에서 떨어져 죽지 않기 위해 현금을 모으고 있는 것일까? 주주들이 아무리 불만을 제기해도 애플은 계속 차곡차곡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일까?

현금보유고는 애플에게 밝은 미래를 보장해줄 것인가? 아직 오지 않은 앞날이지만 한번 고민해보자.

p.s : 제가 애플과 스티브잡스를 다룬 단행본 책을 내게 될 것 같습니다. 며칠전 잘 알려진 출판사 한 곳과 출간계약을 맺었습니다. 진행되는 대로 더 상세한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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