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통제가 최선이라고 믿는 어떤 사람은 법과 도덕을 앞세우면 모든 사람이 보다 선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무겁게는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사형 같은 극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부터, 가볍게는 음주나 간통 같은 사생활의 문제까지도 법으로 통제하면 더 좋은 사회가 될 거라는 생각까지 다양하다.

대체로 사람들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일방적 통제에는 항상 반발했다. 청교도적 윤리관을 앞세운 미국의 <금주법>는 술이란 악마를 쫓아내는 데 실패했다. 단지 불법으로 술을 만들어파는 양조장과 그것을 비호하는 마피아 세력만을 성장시켰을 뿐이다.


오늘날 사회에 넘치는 음란물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의 생각이야 어쨌든 이것을 완전히 차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풀어놓을 수도 없다. 어떻게 보면 음란물은 술과 담배와도 비슷한 <성인의> 기호식품 비슷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상에 혁신을 가져오고 있는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는 지난 4월 “포르노를 내려받고 싶으면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을 사라”고 말해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애플 제품로부터 음란물을 인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발표에 많은 성인 소비자들이 실망했다. 심지어는 애플을 사랑하고 스티브 잡스를 항상 옹호하던 많은 애플 팬보이마저도 낙심했다. 일부에서는 저 언급이 미국법으로도 불법인 <아동 포르노>를 겨냥한 것일 뿐 합법적인 <건전한 성인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사실 4인치 남짓한 작은 아이폰의 스크린으로 음란물을 보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감흥을 불러오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10인치인 아이패드의 스크린으로 보는 음란물이라고 해도 엄청난 구경거리는 아니다. 이미 우리 가정에는 최소한 20인치가 넘는 텔레비전이 있다.

앱스토어에만 올라오지 못할 뿐, 방법은 있다. 정히 애플제품에서 음란물을 보고 싶다면 사파리를 통해 웹 음란사이트에 접속하면 된다. 사파리는 아직 웹상의 정보를 자동분석해 무엇이 음란물인지 판독해서 자동차단하는 혁신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저 무엇이든 화면에 표시해줄(플래시는 제외) 이 충실한 웹브라우저를 통해 성인 소비자는 원하는 것을 볼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마치 <훔친 사과가 더 맛있다>는 교훈 때문일까. 인위적으로 막는 것을 뚫고자 하는 욕망이란 건 또 다른 문제다. 그건 마치 월드컵에서 상대 수비수의 격렬한 수비를 뚫고 골을 넣었을 때의 쾌감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


영국 신문 <더 선(The Sun)>이 최근 아이패드 앱으로 음란성 짙은 <페이지 3걸>을 제공했다. '더 선'은 스캔들 기사를 주로 싣는 선정적 타블로이드판 대중지다. 특히 3면에 토플리스 차림의 여성 사진인 <페이지 3 걸>을 매일 게재하고 있다.

뭐 솔직히 말하면 이건 음란물이라고 보기도 모호할 것이다. 기껏해야 해변에서도 볼 수 있는 수영복 사진이나, 패션쇼에도 나오는 속옷차림 수준을 간신히 넘을까. 그렇지만 잡스의 말에 잔뜩 긴장했던 업계에서 조금씩 잡스가 말하는 <포르노>의 기준을 시험해보고 있는 듯 하다.

대체 어디까지가 허용되고 어디까지나 안되는 걸까?

극단적으로 말해서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음란물이 여자의 비키니 수영복 사진도 허용되지 않는 수준인지, 아니면 완전 알몸이어야 적용되는지, 동성애는 허용되는지 이런 것이다. 아마도 그것에 따라 아이패드 등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 <플레이보이> 라든가 <펜트하우스>를 비롯해 일본의 많은 18금 잡지들의 희비가 갈릴 듯 싶다.


아이패드에서 잡스의 입장은 과연 얼마나 단호할까.



잡스는 아이패드를 내놓으면서 이것이 E북과 상업 잡지 시장을 활성화 시키길 원했다. 그런데 바로 그 잡지 시장의 큰 손 가운데는 위에서 말한 <플레이보이>를 비롯해 일본의 <그라비아> 잡지들도 있고 누드사진도 즐겨싣는 유럽의 <남성잡지>들도 있다. 이들을 과연 어떻게 대우해야 할 지는 애플의 고민거리일 것이다. 배제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시장이고, 파트너로 삼기에는 잡스의 말에 어긋나니까 말이다.

문제는 선진국에서조차 민감하고 종종 재판까지 가게되는 <포르노>의 기준과 <합법>의 판정이 전적으로 애플이란 미국 사기업, 혹은 스티브 잡스란 개인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겨진다는 것이다.

그것도 작은 것이 아니다. 아이폰은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30퍼센트를 차지했으며, 앱스토어 기준으로는 독과점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는 시장이다.
발표에 따르면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를 합쳐 2010년까지 보급대수 1억대로 예상하는 거대 플랫폼이다.


그곳에서 남을 지 퇴출될 지를 결정하는 모든 권한이 단지 한 사람에게 쥐어져 있다. 그건 아무런 합의된 법률도 없고, 이의를 제기하고 재판을 받을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애플세계의 독재제체다. 스티브 잡스는 어쩌면 스스로가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어차피 좋아서 애플을 선택한 소비자들이니까 상관은 없다. 언론 검열을 반대하는 미국이지만 이런 자본력과 점유율을 앞세운 검열은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애플 팬보이 가운데 누구도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항의한 적이 없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음란물을 막을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 사람의 욕망이란 법과 도덕만으로 억누를 수 없다.
미국의 금주법은 실패했다. 동유럽이 무너지게 된 동기는 일찌감치 국경을 넘는 전파로 보던 음란물에 있다는 말이 있다. 베타와 VHS방식의 운명은 포르노 업자들의 선택에 따라 결정됐다는 관측도 있다.

지금 이시간에도 미국의 음란물 제작업자들은 유쾌하게 외치고 있다.



스티브, 미안하지만 아이패드는 바로 포르노를 위한 거야!

그렇다. 천하의 스티브 잡스도 막지 못할 것이 바로 음란물이다.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고 애플의 지독한 통제마저 무너뜨리게 될 것이 바로 음란물이라는 건 명확하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통제는 실패할 것이고 우리는 원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이패드든, 아이폰이든 결국 소비자를 위한 기기라면 그 소비자의 욕구가 만든 사람의 욕구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도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애플로부터 쟁취할 유일할 길이 바로 음란물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이 사실을 놓고 나는 기뻐해야 할 지 슬퍼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