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스마트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단 하루 만에 중요한 발표회가 두 개나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IT계의 스타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아이폰4였고 또 하나는 한국의 글로벌 기업 삼성이 야심차게 선보인 갤럭시S였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선보인 애플의 발표회에서 잡스는 과연 그 이름답게 훌륭한 발표를 했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배우자는 책이 나올 정도로 원래부터 뛰어난 실력이지만 새로운 아이폰4란 좋은 제품이 발표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감탄과 환호성 속에 성공리에 끝난 애플의 아이폰4 발표가 끝난 다음, 그날 아침에 바로 삼성의 갤럭시S도 성대한 발표회를 열었다. 안드로이드를 만든 구글의 앤디 루빈이 직접 참석한 자리인 만큼 화제성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두 발표회가 끝나자 인터넷에는 초라하게 묻혀버린 갤럭시S에 대한 비판과 무시만 흘러넘쳤다. 심지어는 아이폰4와 일부러 같은 날 발표회를 연 무모함을 조롱하기도 했다.

나도 처음에는 <대체 뭔 배짱이야? 망하려고 작정했나.>라고 피식 웃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아이폰4에 정면승부한 삼성, 과연 비웃을 일인가?

솔직히 그동안 삼성이 잘한 건 별로 없다.
삼성은 국내 핸드폰 시장을 과도하게 왜곡하며 횡포를 부렸다. 휴대폰의 삼성전자에게 있어 고객은 이통사였지 그 단말기를 쓰는 소비자가 아니었다. 해외에서는 당연하게 탑재되는 와이파이 기능이 늘 한국에만 오면 <이통사 정책에 따라> 삭제되었고 보상이라도 되는 듯 DMB기능을 넣어주었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늘 해외보다 비쌌다. 이 외에도 많은 불만을 야기할 정책을 썼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삼성은 한국에 국적을 두고 제조 연구 시설을 둔 글로벌 기업이다. 주식 절반이상을 외국인이 가지고 있다거나, 생산은 해외에서 많이 한다는 그런 자잘한 말은 하지 말자. 다른 외국이라면 몰라도 삼성에게 있어 한국은 그야말로 홈그라운드다. 자기 홈그라운드에서 하는 발표회에서 기선을 제압당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나쁘고 독한 사람이라도 고향에서 초라한 몰골은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때문에 삼성이 일부러 맞불 작전으로 나간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준비가 부족했고 마인드가 아직 못따라간다뿐이지 아이폰4와 한국에서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용기 자체는 칭찬할 만하다.

나는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남미와 유럽 강팀을 맞아 공격축구를 하는 걸 바라지, 처음부터 상대가 안될 거라 생각해서 전원수비로 임하다 결국 골을 먹고 지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비록 안좋은 결과를 낳았어도 애플과 맞짱을 뜬(?) 삼성의 용기는 칭찬해주고 싶다. 나름 글로벌기업이고 휴대폰에서 전세계를 상대로 상당한 성과를 올린 삼성이 애플의 발표를 피해서 이리저리 소심하게 기웃거린다면 그건 또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물론 삼성이 이런 용기의 절반 만이라도 제품 혁신성과 소비자에 대한 배려에 신경써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삼성이 용기만 넘치지 결국 보여준 게 아무것도 없으니 조롱 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할 것이다. 또한 잡스의 애플이 보여준 제품 완성도와 혁신에 비하면 너무도 떨어지는 제품을 가지고 굳이 자존심 세우는 게 우습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굳이 삼성만의 문제인가?

애플이 보여준 혁신에 제대로 당한 거대 기업은 많다. 워즈니악이 애플컴퓨터를 만들어 보여주었을때 알테어는 완전히 무시했다. 매킨토시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안의 GUI를 개발했던 제록스는 완전히 바보가 됐다.
 

PC 운영체제의 제왕 마이크로소프트가 어설프게 매킨토시를 따라한 윈도우 1.0을 발표했을 때, 좋은 소리를 들었을 것 같은가? 엄청난 악평과 조롱에 시달려야 했다. 윈도우는 죽었다깨어나도 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걸 이겨내고 개발을 이어나가지 않았으면 지금 전세계 90퍼센트의 PC가 쓰는 윈도우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누가 뭐라해도 윈도우가 시장의 지배자다.

휠 인터페이스를 탑재한 아이팟에 급습당한 MP3플레이어 회사 아이리버라든가, 아이폰에 대책없이 밀려나는 노키아 역시 희생자다.  애플을 제외한 나머지 전세계 회사 모두가 상대적으로 멍청하고 소비자 배려에 소홀한 회사가 되어 버렸다. 즉, 삼성이 멍청한 게 아니라 애플과 잡스가 너무 잘난 거다. 그게 진실이다.

그러니 더이상 삼성의 발표회를 비웃지는 말자. 차라리 이후로 삼성이 이 제품을 가지고 우리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를 지켜보자.


역설적이지만 이렇게 정면승부를 해서 삼성이 얻게 된 것도 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열린 외국 발표회보다 인기도 없는 국내발표회를 치러본 경험으로 인해 제품과 소비자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삼성에게 몇 마디 하고 싶다.

삼성은 이통사가 고객이 아니고, 소비자가 고객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어째서 국내에서 감히 무서운 상대가 없던 삼성이 그토록 공을 들여 준비한 자리에 대한 반응이 썰렁했는가를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더는 삼성에게 기회도 미래도 없다.

혹시 아직도 자만하고 있는가? 삼성이 그래도 매출액도 많고 계열사도 많으며, 한국에서 이통사와 끈끈한 관계라서 아이폰4에 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삼성이라면 믿고 사주는 고객이 많으니 기존 방식대로만 하면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혹시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는 삼성 관계자나 소비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한 가지 일화를 들려주고자 한다.

아이튠즈가 등장한 2003년께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을 만나 애플에 대해 걱정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소니는 애플보다 제조업에 대해 훨씬 잘 안다' 면서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더군요. 1위 기업이 뒤로 밀리는 것도 한순간입니다."  - 켄 올레타

음반사와 영화사까지 손에 넣고 게임기 시장을 평정하다시피 한 강력하던 소니가 속된 말로 <한 방에 훅갔다.> 이유는 자만이다. 나는 삼성이 제 2의 소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기업간의 경쟁은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에서는 비록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최후까지 공격을 통해 활로를 뚫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폰4 발표회에 대고 정면승부를 택한 삼성의 용기는 비웃음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삼성은 이후로 더 좋은 제품개발과 서비스 지원을 통해 그 용기가 자만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소비자들은 결국 등을 돌릴 것이다.



삼성은 글로벌 기업이다. 어설프게 애국심같은 것에 호소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인들이 종종 주권자가 국민이라는 걸 잊어먹듯이 삼성도 가끔은 소비자가 왕이라는 걸 잊어버리는 듯 하다. 제대로 강조해둔다.

소비자는 왕이다. 왕은 자기를 모시는 신하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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