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혁신기업이 애플이고 그야말로 IT 계열의 천재가 스티브 잡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긴 8비트 컴퓨터 시대부터 시작해 스티브 잡스와 그가 세운 애플의 역사는 곧 컴퓨터 자체의 역사고, 혁신의 역사였다. 나는 이러한 모든 것을 이끌어낸 스티브 잡스를 존경하며 그를 IT업계의 영웅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스티브 잡스라고 모든 것을 전부 혼자서 했을까? 창세기의 하나님처럼 아무 것도 없던 대지에 혼자만의 생각과 노력을 가해 모든 것을 이루었을까?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성공적인 경영자고 비즈니스맨이다. 그것뿐이다. 엔지니어가 아니고 디자이너도 아니며, 복잡하고도 정교한 마케팅과 홍보에도 그다지 재능이 없다.

 

스티브 잡스가 가진 가장 천재적인 능력의 본질은 하나다. 어떤 것이 가까운 장래에 소비자에게 가장 각광받게 될 기술이냐는 것을 읽어내는 미래전망 능력이다.

그것도 그 기술을 직접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남에게 사오거나 혹은 도입해서 자기 기술로 소화해 낸다. 필요한 인재를 큰 돈을 들여 스카우트하고 잘 조직해낸다.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스스로가 소비자 입장이 되어서 만들어진 제품을 검토해 본다.

 

결국 미래 전망이 잡스가 가진 가장 특출난 능력이다. 나머지 대화술이라든가, 프레젠테이션 능력이란 건 모두가 근본적으로는 미래 전망이 옳바르기 때문에 얻는 부수적인 능력일 뿐이다.

여기서 논란이 될 화두를 하나 던져본다.

 

스티브 잡스는 소니를 모방했다. 자연히 잡스가 이끄는 애플과 애플 제품의 특징 전체가 소니를 모방했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반대로 소니가 애플을 모방한다면 모를까 현재의 소니와 애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고개를 흔들 것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로 시간을 한번 거슬러 올라가보자.

 

80년대 중후반에 걸쳐 일본과 일본의 가전회사들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소니는 워크맨의 성공으로 인해 당시 기준으로 혁신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일본 가전회사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나온 원천기술을 가지고 철저히 일본식으로 개량해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디지털 액정화면을 탑재한 소형 음향기기인 워크맨은 유선리모콘과 소형 이퀼라이저까지 탑재하며 사용자들을 열광시켰다.

 

이후로도 소니는 컴퓨터에서 3.5인치 플로피 디스켓과 트리니트론 방식이라는 획기적인 브라운관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이 외에도 소니와 일본업체가 주도한 당시의 컴퓨터 관련 혁신기술이나 그것을 제대로 마케팅하는 방법은 정말로 대단했다. 미국의 가전업계와 컴퓨터 부품업계가 폭격을 맞듯이 일본업체에 밀려 쓰러지는 시대였다.


 






일본 기업의 위세가 아직 그 힘을 잃지 않았고 미국 가전업계는 완전히 멸망한 90년대.


바로 이 시대에 잡스는 한때 자기를 쫓아냈던 애플로 돌아왔다. 이때 애플은 잡스가 완성해놓은 매킨토시란 틀만 가지고 어떠한 혁신도 없이 그저 특정 사용자층만 겨냥한 고가정책으로 연명하고 있었다. 점유율은 MS의 윈도우에 밀리고 자랑하던 맥의 운영체제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지며 낡아버렸다. 존스컬리의 경영력 덕분에 순이익은 그런대로 불어났지만 누가 봐도 애플에는 미래가 없었다.

 

그럼 이때 잡스의 상태는 어떠했을까.

 

애플에서 쫓겨나서는 혼자서 성공해서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NEXT 컴퓨터를 만든 이후 잡스의 사업은 모두 실패했다. 분명 혁신적인 미래기술이기는 했지만 너무 비싸고 당장 눈앞의 실용성은 없었다. 이때 3D 애니메이션 회사인 픽사에 투자했던 것이 성공해서 <토이스토리>를 통해 대박을 치지 않았다면 잡스는 그저 망한 사업가의 하나로 기억됐을 것이다.

 

즉 컴퓨터 사업에 있어 이 시대의 애플과 잡스는 둘 다 실패자였다. 애플은 돈이 있지만 미래가 없다. 잡스는 비전은 있지만 성공한 제품이 없다. 이 둘이 만났을 때 새로운 혁신제품을 내놓게 되면 기존 사업모델을 재정립하는 것도 필요한데 그것도 없다. 그럼 과연 돌아온 잡스가 모든 것을 전부 혼자서 독자적으로 창조해냈을까?


 






아니다. 잡스 성공의 시초인 애플2의 하드웨어는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었다. GUI를 도입한 리사는 제록스 연구소에 가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매킨토시는 제프 라스틴이 주도한 프로젝트였다. 이제까지 잡스가 한 일은 이런 다른 사람의 발명에서 미래를 예측하고는 힘을 실어주면서 사업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후의 잡스는 이때 업계의 성공한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두루 살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이 이때 세계 가전제품과 IT를 호령하던 글로벌 브랜드 소니였다.

 

이때까지 애플은 제품만으로 승부했다. 특별히 애플이란 이름을 강조하지도 않았고 어떤 브랜드로 각인되지도 않았다. 단지 자연스럽게 혁신적인 제품을 내니까 좋은 회사라는 이미지 정도였다.

 

하지만 소니는 이때부터 이미 <소니는 쿨하다.> 라는 인식을 퍼뜨리고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기술에 이어진 디자인이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소니 제품은 기능보다도 디자인에서 타 회사를 압도했다.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으로 인해 제품의 마무리와 품질도 매우 좋았다. 이때부터 소니란 브랜드는 젊고 기발하며 쿨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워크맨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안에서 듣는 음악을 위한 음반산업, 가정용 텔레비전을 비롯해 컴퓨터 모니터 등 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통합해서 소니로 해결할 수 있는 <소니 스타일>이 구축되었다.

 






때문에 SONY란 상표는 단순한 제품에 붙은 딱지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과시용 브랜드로까지 이미지가 올라갔다. 이런 현상을 제대로 본 잡스는 이것을 장래 애플이 지향할 사업모델로 삼았을 것이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이런 말이 전혀 없다. 최근 서점에 나온 애플 관련 책 가운데 되돌아온 잡스가 ‘앞으로 우리가 나갈 길은 소니다!’ 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대목이 있다. 하지만 출처가 따로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가쉽성 언급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심있는 분은 책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잡스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엑스포에서, 그리고 뒤이어 동경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대에서 나와 신상품을 직접 소개한다. 타이테이니엄에 대해 그는 '믿기 어려울 만큼 놀랄 만한incredible 이란 형용사를 십 여번이나 사용했고, "우리는 소니를 존경합니다. 우리는 소니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훌륭하게 되고 싶습니다."라고 두번이나 반복한 후, 새로운 애플 파워북이 모든 측면에서 소니의 바이오를 능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노트북 컴퓨터"라고 설명했다.

- iCEO 스티브잡스 . 시릴피베 지음/유정현옮김 . 도서출판 이콘


  어쨌든 이후 애플의 행보는 소니의 그것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

  성능보다는 그 파격적이고 매력적인 디자인이 화제가 되어 가지고 싶은 컴퓨터가 된 ‘아이맥’을 보자. 가지고 다니는 음향기기로서 패셔너블한 아이팟은 워크맨의 재현이라 불릴 정도다. 그리고 잡스는 소니처럼 음반사를 세우고 영화사를 인수하는 대신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를 만들어 컨텐츠를 장악했다. 이후 애플은 음악과 컴퓨터에 관련된 일련의 제품군을 갖추며 애플 제품으로만 일련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애플 매니아를 만들어냈다.

 

80년대와 90년대를 풍미한 소니스타일은 이제 애플 스타일이 되어 우리 앞에 와 있다.

1.혁신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중시해서 스스로를 명품화 시키며 치열한 가격경쟁에서 벗어난다.

2. 쿨하고 멋있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통해 소비자들이 가지고 싶은 제품과 컨텐츠를 동시에 장악한다.

3. 컨텐츠와 제품이 서로를 상승시켜 주는 효과를 통해 소비자를 계속 애플이란 회사에 묶어둔다.
 
4. 때문에 비슷한 기능이라도 타 회사보다 상당히 높은 마진을 붙일 수 있으며 소비자들은 기꺼이 그것을 산다.

 






이것이 바로 소니에게서 잡스가 배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애플이 취하고 있는 성공비결이다. 삼성 역시 소니를 배웠다고 하지만 혁신제품이란 부분은 배우지 못했다. 단지 기업경영의 기술적 부분과 품질 관리 같은 핵심이 아닌 부분을 배웠다. 반면에 애플은 가장 핵심을 모방했다. 그 위에 자기들의 장점인 독자적인 기술력을 가미시켰다.

잡스가 지휘봉을 잡은 후부터 많은 관측자들은 잡스가 애플을 '컴퓨터계의 소니' 로 만들려 한다고 평가했다. 세계적으로 매우 강력한 상징, 혁신적이면서도 가격면에서 포지셔닝이 잘된 제품을 갖춘 소니는 본받을 만한 모델이었던 것이다. 2001년부터 이 두 회사는 포지셔닝에 있어 뚜렷한 유사성을 띄게 되었다.
 - iCEO 스티브잡스 . 시릴피베 지음/유정현옮김 . 도서출판 이콘

결론을 내려보자. 분명 스티브 잡스는 위기에 처한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로서 소니를 모방했다. 하지만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남의 장점을 잘 분석해서 이용했던 장점이다. 원래부터 잡스의 재능에는 자기에게 능력이 없으면 남의 능력을 이용하는 능력도 포함되어 있다. 그에게는 다른 회사가 고안해내서 성공한 비지니스 모델 역시 이용할 수 있는 선택옵션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소니는 몰락하고 그 제자 삼성이 떠올랐고, 삼성이 위기를 느끼는 사이에 애플이 최고 기업으로 부상했다. 이제는 80년대의 왕자 소니가 제자였던 삼성을 배우자고 하고 그 삼성은 애플을 본받으려 하고 있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인가 보다.

 






이어지는 후속편에서는 구체적으로 스티브 잡스가 소니를 본받아 펼친 세부적 특징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다.

 




이 글이 오늘자 다음뷰 메인에 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