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인가제



"인가제가 통신요금 인하를 가로막는 주범이라고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가제는 지배적 사업자가 요금을 인상하는 것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요금설정에 따라 지배력이 남용되는 것을 사전에 제어할 수 있습니다"


2014년 8월 20일, LG유플러스가 주최한 강연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대구대학교 경영학과 정인준 교수는 통신요금 인가제가 가진 순기능을 강조했다. 논란은 있지만 비교적 성공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안전장치 없이 폐지하면 더 큰 부작용이 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통신요금 인가제란 시장지배적 통신사업자가 요금을 인상하거나 새로운 요금제를 출시할 때 정부의 사전 인가를 받도록 의무화한 제도이다. 요금인하 때는 정부에 신고만 하면 된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현재 이동통신에서는 SK텔레콤, 유선 통신시장에서는 KT가 해당한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병헌 의원이 요금인가제 폐지법안을 발의했으며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정인준 교수는 인가제 폐지 결론이 나오기 전에 바람직한 요금 규제 설정에 대해서 고민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이 출발부터 좋은 주파수를 점유한 사업자가 독주하게 되어 점유율 고착의 원인이 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항상 5:3:2 구조가 유지되는 경쟁구조가 되어 왔다. 


시장집중도 HHI지수로 평가해 볼 때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시장집중도가 높으며 유럽 주요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이렇게 시장지배력이 높을 수록 이용자 후생이 감소하고 시장지배력이 감소된다.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정 교수의 주장이다.


정 교수는 인가제의 부작용으로 약탈적 요금제 설정을 들었다. 시장지배 사업자가 원가 이하의 낮은 요금을 내놓아 후발 사업자를 시장에서 탈락시켜 버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결합상품 등을 통해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SK브로드밴드의 예를 들며 규제당국이 공정경쟁 환경을 만들 의무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 의무를 수행하는게 현행 인가제이며  만일 사전 인가제가 폐지되고 사후규제만 적용되면 규제의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시장에 부정적 영향이 다 퍼진 후에 되돌아가는 게 쉽지 않다는 논리다. 


현재 시장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요금인가제



ETRI 한성수 박사는 초기에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한 통신사업자 사이에 커다란 점유율 차이가 나게 된 원인을 학술적으로 분석해서 제시했다. 한 박사는 경쟁시장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요소에 자원특이성과 기술특이성이 있다고 분석하며 "이통시장에서 자원은 주파수이고 기술은 기술적 서비스 제공방식입니다. 이 두가지 특이성 가운데 분석해보니 자원특이성인 주파수 차이에 따라 모든 집단에서 두드러진 차이가 발생했습니다" 라고 설명했다.


요금 인가제와 주파수 배분 문제는 현재 이통시장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두 가지 핵심논제이다. 좋은 주파수를 배정받은 사업자는 기지국 설치비용과 단말기 기술 적용이 쉬워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 요금 인가제는 이렇게 앞서 나간 사업자에 비해 뒤진 나머지 사업자가 시장에서 경쟁을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 비대칭 규제다. 따라서 규제당국이 자유경쟁 원칙과 공정경쟁 관리 책임 사이에서 나름 시장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권한을 준 제도이기도 하다.


이 자리에서는 요금인가제에 대해서 안전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인준 교수는 "호주에서도 사전규제를 해던 적이 있는데 그때 1위 사업자가 과반을 넘는 점유율이었다" 라고 예를 들고는 "인가제 폐지를 위한 점유율을 어떤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고 지배적 사업자의 시장지배력을 면밀히 분석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파수 배분에 있어서는 보다 공정한 배분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한성수 박사는 "이통시장 점유율은 사업자의 선택이나 노력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 주파수 배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고 전제하고는 "다수 사업자가 탐내는 주파수 대역에 대해서는 현행 경매 방식이 아니라 보다 공정한 배분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스마트폰 천만대 시대를 맞아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상황은 사용자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공정한 규칙 안에서 사업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사용자가 실질적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주파수 배분과 정당한 요금경쟁이 이뤄지려면 과연 시장자율을 강화하는 쪽이 좋은 지, 아니면 관리와 규제를 강화하는 쪽이 좋은 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