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애플의 재판이 드디어 해를 넘겼다. 당초에는 작년인 2012년 내에 1차 판결이 나올 거란 예상이 많았다. 배심원의 평결이 압도적인 애플의 승리로 굳어진 마당에 시간이 걸릴 어떤 것이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치 극적인 효과를 품은 헐리우드 영화처럼 이 재판을 둘러싸고 숨겨진 사실이 터져나오고 다른 소송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미국은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몫지 않게 이 재판까지도 영화로 만들고 싶은가 보다.



삼성과 애플



미국법원이 한가지 중요한 판결을 내놓았다. 이전의 재판 과정을 굉장히 신속하게 하던 것과는 달리 1차재판의 최종판결을 한꺼번에 미뤄오면서 무엇인가 보편타당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우선 미국법원은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적어도 '고의적으로는'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출처)



삼성과 애플 재판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의 루시 고 판사는 29일(현지시간)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한 가운데 고의성이 없다고 판결했다.


고의성 여부는 법원이 손해배상액을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미국 배심원단은 지난해 8월 삼성전자가 애플 특허를 침해했다고 평결하며 삼성전자가 애플에 10억5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평결했다. 만약 법원이 특허 침해의 고의성을 인정할 경우 손해배상액을 최대 3배까지 증액할 수 있다. 애플도 배심원 평결 이후 삼성전자에 추가 손해배상액을 요구하고 있다.


루시 고 판사가 이날 고의성이 없다고 판결함으로써 삼성전자의 손해배상액은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루시 고 판사는 지난달초 진행된 평결불복 법률심리(JMOL)에서 양측 변호인에게 배심원단이 애플의 피해액을 잘못 계산했으며 손해배상액을 조정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밝혔다. AP 통신은 "판사가 (배심원단이 명령한) 10억5000만달러 손해배상액을 줄여 줄일 준비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편 루시 고 판사는 이날 애플 아이패드, 아이패드 2의 전체적인 외관과 느낌(look and feel)을 의미하는 '트레이드 드레스'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배심원 평결도 확정했다. 배심원단은 지난해 8월 갤럭시탭 10.1이 애플 아이패드 디자인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평결했다.


법률의 위반여부만을 따지는 법정에서 난데없이 고의성이란 게 등장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법은 대체로 결과만을 따지기 때문이다.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이 사실이라면 고의로 훔쳤느냐 고의가 아니었느냐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물건이 내 주머니 속에 있었어요!' 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고의적 침해란 좀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삼성과 애플



삼성과 애플 재판, 고의적 침해의 의미는?


지난 재판 과정을 한번 생각해보자. 여기서 애플이 주력한 것은 두 가지 사실이었다. 


1. 삼성이 애플의 기술을 침해했다. 

2. 침해받은 특허는 애플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술이다.


배심원과 법원은 이 두 가지 사실 모두를 인정했다. 이 재판에서 삼성이 주력한 것은 세 가지 였다.


1. 애플의 특허기술 이전에 다른 업체가 만든 선행기술이 있었다. 따라서 특허 자체가 무효이다.

2. 삼성은 선행기술을 배우는 연장선상에서 애플의 기술을 이용했다.

3. 애플도 삼성의 특허를 침해했다.



선행기술



배심원의 평결로는 이 세가지 사실 가운데 하나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다룬 고의성은 1번 사실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의 특허 자체가 무효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선행기술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나올 수 있는 판결이다. 즉 아이폰을 본 삼성의 입장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1. 아이폰에는 애플의 기술이 담겨있다.

2. 하지만 선행기술이 있으므로 그것이 특허로 보호받을 정도의 기술은 아니다.

3. 따라서 해당하는 애플의 기술을 이용했다.


이것이 바로 고의성이 없는 침해라고 해석하는 이유다. 만일 선행기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거나, 선행기술이 전혀 애플의 특허기술과 닮지 않았다고 해석한다면 나올 수 없는 판결이다.



삼성과 애플



물론 이 판결은 삼성이 무죄라는 판결이 아니다. 고의적 침해라면 배상액이 3배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조항을 무력화시키는 효과 뿐이다. 1조원의 배상액 이상을 내리지 않겠다는 정도의 의미이다. 하지만 미국 특허청에 의해 애플의 고유특허가 계속 무효판결이 내려지는 상황이다. 


항소후 2차 재판은 더욱 시간이 걸릴 것이며 애플이 더 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적다. 결국 미국법원은 숨겨진 메시지는 애플에게 '네 말이 맞긴 한데 재판정에서 이럴 돈과 시간이 있으면 다른 거 하는 게 더 이익일 거야.' 정도가 아닐까?